나의 음주 편력기 #2 - 어머니편

어쨌든 어려서부터 저는 술을 접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생일날 샴페인 터뜨리는 정도랍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다 그렇고 그런 순둥이들이어서 그랬는지, 저희는 소주 먹고 뭐 이런 건 별로 못했습니다. 하긴, 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라서 그럴 일도 없었겠지만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성가 발표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몇 명이 중창을 하게 되었는데, 많이 떨었죠 ^^ 중창을 지도하던 선배가 어디서 와인 한 병을 구해와서 그걸 여섯 명이서 나눠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두 세 친구는 얼굴이 붉어졌던 것 같았고요, 콩당콩당 하는 마음이 진정이 된건지, 오히려 불을 지른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정도가 어릴 적 음주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의 탈출구, 아니 전환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죠. 뭔가 얽매이지 않을 것 같고, 방종이라고 해도 좋을 자유가 있을 것 같은, 대학 일학년의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학생이 많은 과였습니다. 남학생은 복학생 한 명을 포함해서 모두 11명. 덕분에 남학생들이 잘 뭉치기는 했죠. 비록 입학하고 몇 달 뿐이었지만 ^^. 처음 만난 날부터 복학생 형 주도로 11명이 의기투합, 소주집에를 갔습니다. 학교 앞 그 허름한 소주집, 간이 테이블에 앉아 김치찌개를 시켜 놓고 소주 잔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맛보는 소주, 괜히 다른 친구들한테 기죽기 싫어서 아무 소리 않고 원샷, 원샷, 원샷, 그렇게 세 잔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유, 이런 걸 뭐러 먹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쓰기만 하고, 별로 취하지도 않고. 그렇게 조금씩 술을 먹다가 사고(!)가 터진 건 개강파티 때였습니다.

엄마, 오늘은 개강파티 하느라 늦게 와~ 아침부터 인사를 하고 오는데, 어머니가 느끼기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나 봅니다. 너 술 먹으면 안돼~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으십니다. 그 간 조금씩 먹고 들어간 것은 어머니가 눈치를 못 채셨길래, 오늘도 뭐 그렇겠지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 넘긴 거지요.

개강파티, 사실 저는 소주가 맛 없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그래서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분위기에 맞춰 흘러갈 뿐이지요. 개강파티 때도 맥주 두 병 정도 먹었던 것 같습니다. 맥주 먹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다가 놀고… 그렇게 파티는 끝났습니다. 싱겁죠?

사건은 이제부터입니다. 소주 몇 잔 마신 것도 엄마가 눈치 못 챘는데, 맥주 조금 먹은 걸로 표가 나겠어~ 방심하고 들어섰죠.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물어 봅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너 술 먹었어? 물어 보셨지요. 그 때 안 먹었다고 잡아 뗐어야 했는데, 엉겁결에 응, 맥주 두 잔 정도 먹었는데? 라고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무서워서 두 병을 두 잔으로 줄였던 거지요.

난리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붙들고 통곡을 하십니다. 아버지 술 마시는 게 그렇게 한 스러워, 내 너한테는 술 먹지 말라고 일렀겄만,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는 거지요.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 여동생 놀라서 튀어 나오고, 저는 무릎 꿇고 앉아서 잘못했다고 빌고… 하여튼 난리 났었습니다. 아파트 살 때 였는데, 엄마랑 친한 옆집 아줌마가 무슨 일 있냐고 인터폰하고, 그랬을 정도니까요.

아, 그런데, 그게 어머니의 오버이자, 작전이었다는 걸 안 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이젠 술 마시는 일에 대해 어머니가 도저히 시비를 못하게 된, 거의 십여년쯤 지나서였습니다. 장인 장모님이 집에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제가 왜 대학 다닐 때 술을 안 먹었는지 얘기를 막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피식 웃으시더군요. 그 날 사실 술 먹은 것도 몰랐고 넘겨 짚었는데, 제대로 걸렸다는 거였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 어머니의 연기, 리얼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대학 다닐 때 술 냄새를 내면서 집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이 먹지도 않았지만, 소주 한 두어잔, 맥주 오백 정도 먹고 갈 때마다 뛰기도 했고, 껌도 씹고, 온갖 생쑈를 다했습니다. 어머니의 오버 액션에 완전 맛이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은 술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재미없게, 별 얘기 없이 대학 생활을 하다가, 어찌어찌 알던 선배 소개로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이 91년 8월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