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주 편력기 #3 - 첫직장편

어머니의 강력한 태클에 걸려 술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학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나마 졸업식 마친 후 아버지로부터 한 잔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던 건, 바로 첫 직장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4학년 일학기 마치고, 여름 방학 중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냥 작은 회사였는데, 한 달에 한 번 무척이나 바쁜 그런 일이었죠. ^^ 8월 12일에 첫 출근을 했고, 그 날은 어영부영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저하고 동갑내기 여자 친구, 이렇게 둘이 입사 했었습니다. 동갑인데다가 동기라, 거기에다가 그 친구가 또 예쁘게 생겼던 탓에 – 하여튼 ^^ - 첫 날부터 마음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집에 갔으니까요.

13일. 운명의 날이죠. 12일에는 선배들이 바빠서 회식을 못 해주었고, 다음 날 회식을 하기로 했던 겁니다. 삼겹살을 파는 집이었던 것 같구요, 우리 팀 여덟명 정도가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참, 얼마나 설레였겠습니까? 취직도 잘 안되는 과였는데 여름방학 마치고 떡 하니 취직도 됐고, 이렇게 선배들하고 회식이라는 것도 해 보고… 가기 전에 각오 했냐? 라고 물어보던 한 선배의 얄궂은 미소가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하여튼 설레이는 자리였습니다.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각오했냐고 물어보던 선배, 이 선배가 맥주잔을 청하더군요. 댤걀 2개와 함께. 맥주잔에 달걀 노른자를 까 넣고, 소주를 가득 채웁니다. 맥주 잔에 적당히 채우면 소주 반 병이 들어간다는 사실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두 잔을 만들어서 저와 또 같이 입사한 그 여자 동기한테 한 잔씩 줍니다.

마셔~… 그게 답니다. 그 때 저희를 바라보던 다른 선배들의 눈동자… 지금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 뒤에 제가 비슷한 방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히던, 아마 그와 비슷하게 재미있어 하는 모습으로 쳐다 보았겠지요. 저는 차마 먹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냄새만 맡아도 역겹고, 그날 아침 회식 있다고 늦을 거라고 말할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먹지 말고, 그냥 옷에다가 부어라~ 라는 팁을 되새겨 보기도 했습니다만, 순식간에 그 첫 잔을 들이켜 버리던 여자 동기를 보는 순간, 저 역시 맥주잔에 가득 들은 소주와 노른자를 입에 부어 넣고 있었습니다.

그게 한 잔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렁찬 박수와 함께 두 번째 잔이 제조 되었습니다. 첫 잔의 역겨움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잔이라니… 노른자는 빼 주세요~ 여자 동기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두 번쨰 잔은 노른자 없이 그냥...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맥주집에도 간 것 같은데, 화장실 쳐다 보던 기억 밖에 안 나고… 신입 둘이서 술 먹고 바로 퍼져 버리는 바람에 그날 회식은 그걸로 쫑이었습니다.

각오했냐고 물어보던, 술 제조의 악역을 담당했던 그 선배가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어야 했습니다. 택시 안에서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억억 거렸던 것 같고, 그 기억에 어떻게 집을 찾아갔는지 모르지만, 그 선배한테 팔을 맡기고 끌려 올라가던 저를, 어머니가 어떻게 쳐다보셨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아무런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그대로 방으로 달려가서 쓰러져 잤던 것 같습니다. 데려다 준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도, 그냥 같이 자자는 말도 못했답니다. 그 선배도 많이 취했던 것 같아서 아버지께서 같이 자고 가라고 했다는데, 그냥 갔다고 아침에 그러시더군요. 예상컨대 어머니는 넋이 빠지셨던 것 같습니다.

강력한 태클에 걸려 대학교 다니는 내내 술 냄새도 안 내고 오던 놈이 출근 이틀 만에 떡이 되어 그것도 업혀 들어오니 넋이 나갈 만도 하시겠지요. 아마, 이제 내 태클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구나 하고 체념하셨을 런지도 모릅니다. 아, 어머니의 태글이 오버였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 때 어머니 앞에서 혀라도 한 번 내밀어 볼 걸… 그랬나 봅니다.

잠결에도 어머니가 옷을 벗기고 물 수건으로 얼굴과 발을 닦아주셨던 건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아침에 쓰린 속을 붙들고 일어나니, 콩나물 국에 고춧가루 풀어서 주시더군요. 니 아버지 해장국도 안 끓여봤는데, 아들 놈 속 풀으라고 콩나물 국을 다 끓였다고, 투덜투덜 하셨답니다.

그 여파로 저는 97년까지 소주는 입에도 대지 못했습니다. 소주 냄새만 맡으면 올라오는 그 역겨움 때문에 술자리에서는 항상 맥주만을 청해 먹었지요. 제가 경력이 쌓이고 선배가 되고 그러면서 저에게 소주를 먹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맥주는 많이 먹었냐구요? 아니요. 많이 먹어야 두 병… 그렇게 맥주 두 병의 주량을 지키면서 순진한 생활을 유지해 나갔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