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주 편력기 #4 - 신문사편

96년 말, 저는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맡게 됩니다. 6년 동안 일하던 분야에서 떠나 새로운 직장에서, 인터넷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그 전에 하던 일도 소위 말하는 IT 관련 일이었지만, 더 큰 직장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 바로 신문사의 인터넷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신문사라서, 회사에 대한 기대감도 꽤 컸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긴장되게 만들었던 건, 바로 신문사의 음주 문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신문사는 술 많이 먹는다지, 낮술도 많이 먹고, 걸핏하면 폭탄주라는데… 하여튼 별 희한한 소문 다 듣고 갔습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은 그냥 인사만 했고, 하룬가 이틀이 지나서, 팀에서 회식을 해 주겠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신문사 술 쎄다는 거 알지? 나 어쩌면 오늘 못 올지도 몰라… 어머나, 그럼 어떡해, 술 조심하고, 늦더라도 택시 타고 와~ 이렇게 잔뜩 긴장을 하고 그렇게 출근했고, 일도 했고, 어느덧 회식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회식은 1차에서 고기 먹고, 2차에서 맥주 먹고, 뭐 그렇게 정해진 코스였습니다만, 아예 맥주집으로 가는군요. 흐음, 이젠 죽었다~ 각오를 단단히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맥주 몇 병을 시키고, 골뱅이와 계란말이 – 계란말이가 이렇게 맛있는 안주라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 - 가 나왔습니다.

맥주 잔이 돕니다. 여섯 혹은 일곱 명 정도가 같이 있었을 겁니다. 경력으로 옮긴 거라서,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습니다. 한 두어 병 적도 먹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고 시간도 두어 시간 흘렀습니다. 팀장님이 얘기합니다. 이제 그만 일어서지… 아, 드디어 다음 차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나와 보니, 그냥 빠이빠이 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랏?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이지? 다들 약속이 있다고, 내일 보자고 악수하고 그냥 사라집니다. 팀장님이 그러고 가니까, 뭐 다른 사람들이야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헤어졌습니다. 출근한지 얼마 안 되어 친한 사람도 없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냥 멍~ 했었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발면 하나 물 부어 놓고, 허탈하게 창 밖을 쳐다 보았던 그 황당한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사발면 먹고, 지하철 타고, 천천히 집에 들어갔습니다. 열한시 좀 넘었더군요. 어머? 못 들어온다더니? 완전히 아내 앞에서 바보 됐습니다. 몰라야~ 그러고 그냥 자 버렸습니다. 술을 먹기는 뭘 먹어~ 꿍얼꿍얼~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전초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몇일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삼일 지난 후에 같이 일하던 선배와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역겨웠던 소주를 조금씩 이라도 입에 대게 된 건 이 때부터였지요. 약간의 소주와 분위기에 흥이 겨웠던 선배, 오늘은 내가 사야지… 하면서 맥주집으로 데려 갑니다.

아실 겁니다. 광화문에 가면 라이브 카페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허름한 집에 맥주도 팔고 가끔 피아노와 기타도 치는 그런 카페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많이 갔었던 집들이지요. 그 중에 한 곳으로 싹 들어 갑니다. 가자 마자, 양주와 맥주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옵니다. ^^

저의 폭탄주 기행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계절의 이름을 땄던 그 어두운 카페, 오래된 나무 테이블, 팝콘과 마른 안주… 그렇게 시작된 폭탄주를 네 잔까지 먹고, 그 선배와 헤어졌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폭탄주의 맛이었습니다. 독하지도 않고, 시원한 맥주의 맛과 함께 속에 불을 지르는 듯 타오르는 양주의 맛… 맥주잔 속에 양주잔을 그대로 퐁 빠뜨려 먹는 오리지널 폭탄주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때 부터였습니다.

때 마침 회사를 옮긴 때가 12월 이었습니다. 연말 모임, 무척이나 많을 때였죠. 그렇게 선배님들, 높으신 양반들을 따라다니면서 먹기 시작한 폭탄주.. 하루 저녁에 일곱잔은 보통이었습니다. 아마 그 해 12월, 제가 마신 폭탄주가 아마 70잔은 넉넉히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폭탄주와 양주를 먹으면서 단란주점이라는 곳을 가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갈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술을 잘 먹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도망 나오기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거짓말이라구요? 아, 그 때 저의 모습을 아는 분들이 요즘 저를 보면 놀라 나자빠집니다. 제 친구 중 한 녀석은 신문사가 사람 다 망쳤다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

참, 술이란게 무섭게 빨리 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 자리에서 맥주 두 병 이상은 먹지 않았던 저였는데, 이제는 맥주는 맥주 대로, 폭탄주는 폭탄주 대로… 순식간에 술은 늘어만 갔습니다. 젊었던 탓인지, 폭탄주 일곱잔을 먹어도, 전혀 되새김도 없이 ^^ 멀쩡하게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아내도, 제가 그 정도로 먹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전보다 술을 많이 먹는다고 불평하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소주는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차에서 분위기 띄우는 정도… 오로지 2차에서의 맥주와 3차에서의 폭탄주에 저는 그만 폭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폭탄은 먹어도 소주는 안 먹어~ 라고 얘기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지독하고 대단한 음주 이력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주, 이제는 최고의 술은 소주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소주와 친해진 건, 빌어먹을 IMF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