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주 편력기 #6 - 에피소드 소주편

IMF를 겪으면서 소주와 친해지긴 했습니다만, 사실 소주에 얽힌 몇 가지 일들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첫 직장에서 소주로 엄청난 고문을 당한 탓이라서 그 이후 5-6년 동안 소주의 역겨움을 지우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러나, 엄연한 대한민국 현실 상 소주를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소주야 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술이며, 모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술이 아니겠습니까?

에피소드 1. 결혼한지 한 달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사촌 언니 내외가 저를 보고 싶다고, 저하고 같이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사촌 언니 내외, 우리 내외, 이렇게 4명이 충무로에 있는 고기집에서 만났습니다.

그 형님, 인상도 좋고, 말씀도 편하게 하시고, 참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다가 제가 붙임성이 좀 있는 편이어서 ^^ 소주 한 잔 받아 먹고 바로 형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고 엉겨붙었더니,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소주를 권커니 잣커니, 그러는데 어느 틈에 두 병이 비어버렸습니다. 인당 한 병씩 먹은 셈이죠.

그 때만 해도 제가 술을 많이 먹지 않았었고, 또 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연애하면서도 아내와 술을 같이 마신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내도 제가 술을 어느 정도 먹는지 잘 몰랐을 터이고, 같이 마주 않은 처형과 형님은 제가 주는 대로 넙죽 넙죽 받아 먹으니까, 당연히 잘 먹는 줄 알았겠죠.

사실 고역이었습니다만, 그 좋은 분위기를 깰 수 있겠습니까? 아마 소주가 한 병씩 더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소주로 주량을 맞춰 보지 않은 상황이라서 저는 또 주는 대로 넙죽 넙죽…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그 식당을 나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잠깐 깨 보니 노래방이더군요. 나중에 아내한테 들은 얘기로는 제가 노래방 가자고 우겨서 노래방 갔다는 겁니다. 노래방 가자구 해 놓구, 들어오자마자 저는 쓰러져 자구… 제 주량을 모르고 술을 먹였던 형님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그러니 노래가 될 리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제가 깨었던 모양입니다.

형님, 놀아야죠~ 말도 안되는 댄스 해가면서 혼자 노래 부르고, 나머지 세 명은 어쩔 수 없이(!) 분위기 맞춰 노래 부르고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는 또 기억이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를 타고 있었고, 여지없이 창 밖으로 웩웩 거리고 있었죠. 집에 와서 바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젠장, 아내한테 기대서 집에 들어오다니, 이건 또 웬 망신입니까?

그래도 주사는 없었든가 봅니다. 재미있었다고 그랬다는 군요. 아내도 제가 넙죽 넙죽 잘 먹길래 안말렸는데, 그렇게 못 먹는 줄 알았으면 말렸을 거라고 나중에야 얘기하더군요. 가끔 그 형님하고 술 한잔 더 해야지, 그렇게 아내한테 얘기하면, 그 형부는 아직도 당신이 술 못 먹는 줄 알아…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 뒤로 제가 급격하게 내공을 쌓아서 지금은 소주 두 병은 끄덕도 없으니, 아마 다음 번 대결은 해 볼 만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형님네 하고는 더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내한테 얘기해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에피소드 2. 지금은 연세도 많으시고 해서, 술을 별로 안 드시지만, 장인 어른은 애주가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인 어른들이 그렇듯이 사위만 오면 그렇게 술을 내서, 같이 즐기기를 좋아 하십니다. 저희 아버지도 저랑 술 먹자는 말씀은 잘 안 하면서 사위만 오면 집에 감춰둔 좋은 술 다 꺼내십니다. 장인 어른도 아들이 둘이나 있으셔도 아들하고 먹는 술은 재미가 없는지, 아니면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 무조건 대접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저만 가면 무조건 술상이 나옵니다. ^^

장인 어른하고 대작을 하면, 우선 썬키스트 오렌지 주스 잔에 소주를 따르십니다. 병권을 완벽하게 쥐고 똑같이 따르십니다. 역시 한 잔에 반 병씩 들어갑니다. 그걸 원샷 하는 건 아니구요, 천천히 먹기는 합니다만, 장인 어른하고 똑같이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제가 어느 정도 술에 내공이 받혀 있어서 뭐 별 무리 없이 다 쫓아 갑니다. 기분도 맞춰 드리고… 좋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김서방, 반주 해야지… 하시면서 아침 식사 반주로 똑같이 썬키스트 오렌지 주스 잔에 부으십니다. 휴~ 새벽 서너시까지 쉼 없이 술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아침 식전부터 소주 반병을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그래도, 다 먹었습니다. 그걸 먹고 속이 편하게 느껴지는 이른바 해장술의 맛을 느끼려는 경지에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거 먹고 아침부터 알딸딸해서 헤롱대는 걸 본 아내가 장인 어른한테 잔소리 하는 걸 옆 귀로 들으면서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내한테 잔소리를 많이 들으셨던 장인 어른은 그 뒤로는 아침 반주로 그렇게 많은 소주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 장인 어른 건강이 어서 좋아지셔서, 저하고 가볍게 반주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는 비록 잔소리를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