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주 편력기 #7 - 벤처기업편

배경 좋고 든든한 회사를 그만 뒀던 건, 벤처 엑소더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1999년의 흐름을 탔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겠지만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스타 벤처 기업이 등장하고 코스닥 등을 업은 벤처 기업의 성공 사례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대기업은 물론 일반 직장에서 잘 근무하던 젊은 사람들이 대거 벤처 기업으로 이동하는 ‘벤처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저 역시 다름 아니었습니다. 때 마침 코스닥에 등록한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회사 들어가게 된 것도 아주 웃깁니다. ^^ 제가 회사를 옮겼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걸 알고 있는, 이 회사에 먼저 들어가 있던 후배가 어느 날 저녁 저를 부르더군요. 자기네 회사 이사님하고 술 한 잔 하자는 겁니다. 저야 뭐 거부할 이유가 있습니까? 좋다고 쫓아갔죠.

삽겸살 집에서 소주가 두 병 정도 돌았습니다. 이 날 처음 뵈었지만, 그 뒤로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게 된 이 이사님은 소주는 별로 안 드시더군요. 그래서 술을 별로 안 드시나 보다, 생각하고, 적당히 먹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요. 그러다가 2차를 가자고 하시네요. 맥주집으로 옮겼습니다.

헉~ 이 이사님은 저하고 영 반대이신 분입니다. 소주는 안 드시고, 오로지 맥주파시더라구요. 어떻게 그 많은 맥주를 끊임없이 드시던지… 맥주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저는 억지로 억지로 따라가기에 바빴습니다. 그 많은 맥주를 다 처리하고, 소주 때문이든, 맥주 때문이든 얼큰하게 취한 후, 곧바로 3차로 이어집니다.

조그만 단란 주점이었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바로 폭탄주가 돕니다. 폭탄주 일배 돌고 난 후에, 이사님이 자기하고 일하고 싶은 생각 없냐고 물어봅니다. 저도 딱 한 가지만 물어봤습니다.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이렇게요. 군더더기 없이 그래~..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술 먹고~ 일주일 후에 저 그 회사 출근했습니다. ^^

벤처기업에서는 이렇게 일해야 돼~ 하는 생각으로 좀 오버 했습니다. 매일 같은 야근, 저녁식사 때마다 이어지는 반주 – 그런데 인당 소주 1병이 넘어가면 이건 반주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친거죠? ^^ - 들어와서 또 일하고, 열한시쯤 나가서 호프집에서 또 맥주 먹고, 2시쯤 사무실 들어와서 밤 새고…

매일 음주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정말로 그 기간 동안 일도 열심히 했고,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해서 술을 먹기 시작했던, 화려하고 무모한 음주 시대였습니다. 평일에는 술을 쉬어 본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직원들과 시끄러운 호프집에서의 난상토론, 협력하고자 하는 제휴 업체 사람들과의 만남…, 회사 임원 분들과의 뜨거운 논쟁… 하루도 술이 없이는 되지 않았던 그런 날들이었지요. 제가 살아오면서 그 때 만큼 열심히 일을 했고, 정열을 가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 회사를 떠나 있지만, 아직도 그 회사가 제 친정 같고, 사랑스러운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하루는 그 회사에 새로 높은 분이 오셔서 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경영 부문을 총괄하기 위해 외부에서 모신 분인데, 성품 좋으시고,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게 된 분입니다. 이 분 환영 자리에 팀장들이 죽 앉았었는데, 잔 도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장님의 작전이었는지, 파도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종은 바로 악명 높은 고량주였습니다.

중국집에서 고량주 파도타기라… 파도타기 아시죠? 처음 시작한 사람이 원샷 하면 줄줄이 이어서 원샷을 이어가는 그런 술 마시기 말입니다. 저는 고량주를 그렇게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11명 이서 고량주 24병을 먹었더군요. 파도타기를 하면 중간에 빠질 수가 없으니까 인당 두 병 정도씩 먹었다고 해야 겠죠… 그리고 나서 단란으로 옮겨 폭탄에, 노래에… 11시 반에 완전 전사했었습니다.

파도타기나 폭탄주 같은 문화가 직급 높은 사람들에게 좋은 거라는 사실을 이 때 알았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잔 돌리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직급 높은 사람한테 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똑같이 빨리 먹고, 빨리 가면, 아무래도 한 사람한테 잔이 집중되는 걸 막을 수 있겠지요.

매일 같이 먹기도 했지만, 다양하게 먹기도 한 탓에 많은 테크닉을 배웠습니다. 파도타기는 기본이고, 지난 번 폭탄주 얘기 때도 썼지만 메론주 같은 것들도 이 즈음 배운 것이지요. 배운 것은 또 바로 써 먹는다고 ^^ 저희 직원들이 요즘 저한테 이런 걸로 고문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저는 일주일에 4-5일을 먹게 되는 것 같은데, 운이 좋으면 한 달에 한 주 정도는 쉴 수 있습니다. 묘하게 이런 주가 한 번씩은 있어서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는 어떻게 술을 마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줄이긴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버티기가 쉽지 않네요.

술이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기도 하고, 부끄러움을 감싸 주기도 하고, 막힌 커뮤니케이션을 이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술 자리로 갑니다. 혹시 같이 가실렵니까? ^^

나의 음주편력기 End ^^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08.01.29 19:40 ADDR 수정/삭제 답글

    블코인터뷰 보고 들어오게 됐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제가 장식했군요^^
    저 때는 왜 그렇게 술을 마셨었는지 참..ㅎㅎ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1.29 19:45 신고 수정/삭제

      ㅋㅋ 사실 후속편을 이어써야 하는데 그 뒤로 제가 정신이 좀 없었더라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