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2002년 12월 19일. 온 나라는 월드컵 축제와 대선 열풍으로 시끄러웠지만, 난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애 최악의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왔던 사람의 배신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처를 남겼고, 사람을 이렇게 까지 미워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그런 날들이었다. 솔직히 월드컵은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대선 따위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다들 여당 후보가 될 거라고 말했다. 분위기도 그랬고.


당시 노무현 후보. 대선 후보가 되어 놓고도 그렇게 힘든 길을 겪은 사람은 없었을 거다. 대선 후보로 뽑아 놓은 민주당에서조차 대우를 못 받더니 결국에는 노선도 맞지 않는 정몽준 후보와 손을 잡고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그 나름대로의 승부수였을까. 그러다가 대선 전날 말도 안되는 일이 터졌다. 후보 단일화를 이룬 정몽준 후부가 지지를 철회했다. 코미디도 아니고, 허허 웃음이 날 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됐으면 나라 꼴이 어찌 되었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전날 까지만 해도 투표할 생각이 없었는데, 바보 한 사람 때문에 투표를 했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하게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세상에.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 이후로,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기적을 불러 일으켰다. 기득권 층이 아닌 까닭에 기득권 층과 정면 대결한 그에게는 있어서는 안될 일까지 일어났다. 그는 승부사처럼 그 어려움을 하나씩 이겨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상대로 되지는 않는 법. 기득권 층의 강렬한 저항과, 개혁에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너무 큰 장벽이었다. 그의 임기 5년을 실험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건, 그 장벽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넘지 못한 장벽은 입장이 바뀌자 그를 짓눌러 왔다. 공공연하게 그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검찰과 보수 언론은 대놓고 그에게 욕을 해댔다. 하긴, 입장이 바뀌기 전에도 불편한 관계였으니 - 그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지 않고 그대로 용인한 그의 민주주의 실험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 입장이 바뀐 후에 오죽 했겠는가. 그리고 그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일방적이면서도 확대된 발표와 보도의 환상적인 조화 속에 최후의 보루인 도덕심까지 상실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한가. 그의 죽음 앞에, 여전히 그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몰지각한 쓰레기들로 나는 분노한다. 여전히 가증스러운 탈을 쓰고, 말과 행동이 뻔히 서로 다른 저 세력들을 볼 때,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게 떠나야만 했던 그에게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 어느 대통령보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민의 것인 권력을 자신들의 것인양 착각하고, 그 권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누구와는 달리, 그는, 국민의 가슴 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가장 사랑받은 대통령으로. 그 어떤 권력으로도 이 사실만은 빼앗아가지 못할 터이니.
  • Favicon of http://sephia.tistory.com BlogIcon sephia 2009.05.24 23:00 ADDR 수정/삭제 답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일이요. 뉴라이트 같은 잡종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 세오 2009.05.26 17:05 ADDR 수정/삭제 답글

    참으로 슬프고 먹먹하지만 한 마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남은 이들이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