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한 거야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8 - "저작권"

요즘 아이들 숙제를 가만 보면 뭔가 조사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주제를 내주면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가는 건데요, 사실 엣날에도 그런 숙제들이 있긴 했었죠. 자료 찾으려고 신문 뒤져 찢어 붙이고, 대학생 형아들한테 물어보고, 사방 뒤지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좀 다르죠. 다들 인터넷 찾습니다. 검색 사이트에서 키워드만 치면 다 나오잖아요. 공식 웹 사이트도 있고, 블로그에 올라 온 글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숙제 하기엔 공식 사이트보단 블로그가 훨씬 좋습니다. 체험이 곁들여 있으니까요.

한 번은, 학교에서 경복궁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 준 모양입니다. 아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키를 몇 번 두드리더니 금새 글과 사진을 긁어 모아 자료를 하나 만듭니다. 블로그 몇 개를 스크랩 하더니 뚝딱 뚝딱 잘도 만들었더군요. 아빠가 좀 볼까? 하고 봤더니 남의 글과 사진을 모아 그럴 듯한 답사기를 만들어뒀더군요. 사실 초등학생 아이가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모아 뭔가를 만들었다고 해서 저작권을 위반하는 건 아니겠지만, 개념을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이거, 사진은 그렇다 치고, 글은 네가 다 쓴 거니?

- 아니, 인터넷에 있는 거 가져다 붙였는데?

- 그 글하고 사진은 니거가 아니잖아. 그런 거 막 가져다 쓰면 안돼

- 왜? 네이버에서 스크랩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아! 설마 이 녀석이 네이버 스크랩을 들먹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여기서 물러설 순 없죠.

- 만일 누군가 니 글을 니 허락도 받지 않고 갖다 쓰면 넌 기분 좋겠니?

- 음, 아니

- 그런데 왜 너는 남의 글을 막 갔다 썼어?

- 음... 그냥 인터넷에 있는 거라서 썼어. 인터넷에 있는 건 다 써도 되는 거 아니야?

- 아니야, 누군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겠지? 그렇게 애써서 만든 걸 막 가져다 쓰면 될까?

- 그럼 그 사람들은 왜 인터넷에 그걸 올리는 건데?

- 그 사람들은 보라고 올려 놓는 거지, 그걸 그대로 가져다 쓰라고 올린 건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고생해 만든 걸 가져다가 누군가 손쉽게 만들어서 장사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어?

- 응... 그럼 아빠 나랑 지금 경복궁 가야 해. 나 숙제는 해야 되거든.

그래서 꼼짝없이 주말에 경복궁 끌려 갔습니다. 좀 힘들긴 했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사진도 찍어주고 아빠도 모처럼 딸과 바람 쐬고 데이트 했습니다.

지난 번에 잠깐 대학생들 만나 얘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저작권에 대해서 정말 많이 모르더군요. 물론 저작권 자체가 복잡하고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긴 합니다만, 다들 한 두번씩은 알게 모르게 위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대학생들 잘못이겠습니까.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빨리 체계화하지 못하고 이를 가르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요. 게다가 공유라는 개념이 꽤 왜곡된 까닭에 저작권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내 꺼 아니면 다 남의 것인 법입니다. 누가 허락 없이 내 사진과 글을 가져다 쓰면 안되는 것처럼 나 역시 남의 사진과 글을 함부로 쓰면 안됩니다. 이 말은 남의 것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얘기이면서 한편으로는 내 것을 소중하게 지키라는 말과 같습니다. 남의 것과 자신의 것을 동시에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딸 아이도 이제 슬슬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겠지요. 스스로 쓴 글과 직접 찍은 사진들로 예쁜 세계를 만들기를 아빠는 응원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만든 소중한 기록 속에 저작권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라 결국은 나와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기를, 그저 아빠는 바랄 따름입니다. / FIN

  • Favicon of http://www.iloveuk.kr BlogIcon 행복한꼬나 2010.02.01 13:27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빠의 작은유산. 제가 이 메뉴얼 얼마나 좋아하는 지 모르시죠? :) 헤헤. 저도 경복궁 숙제하러 아빠와 자주 갔었어요. 인사동도! 아빠랑 인사동에 자주 가서 이것저것 구경도 실컷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던 기억에 인사동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즐거운 추억이 하나 더 생기셨겠어요!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2.01 14:01 신고 수정/삭제

      아이가 크기 전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커서도 할 수 있는 게 많더라. ^^ 사실 이 글 쓰다 보니 나한테 남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 ^^ 땡스!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2.01 15:27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번 주말은 방학숙제 주간이었구만요..ㅋㅋㅋ
    정현이 숙제 트랙백 걸어봤어요..ㅎㅎ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2.01 15:29 신고 수정/삭제

      ^^ 어제 머 생난리를 치고 다 하드만. 근데 여기 쓴 얘기는 좀 된 얘기라네 ㅋ
      그나저나 오랫만인걸? ^^ 신년회 함 하셔야지?

  • Favicon of http://luminance.kr BlogIcon 루미넌스 2010.02.02 12:30 ADDR 수정/삭제 답글

    올바르게 자라가는 따님 보시며 보람차시겠습니다^-^
    간만에 만나는 훈훈한 글이라 댓글 남기고 갑니다ㅎㅎ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2.02 17:56 신고 수정/삭제

      ^^ 고맙습니다. 아이가 자랄 수록 더 애틋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