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야, 같이 하는 거지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이런 글 쓰면서 무척 가정에 충실한 남편인척 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집에선 거의 손 하나 까딱 안하고 같이 맞벌이 하는 아내가 집안 일을 더 많이 합니다. 물론 아내는 오후에 출근하느라 오전에 좀 여유가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좀 불공평할 정돕니다. 일단 이런 거에요. 

식구들 밥 챙기기, 빨래, 장보기, 재테크, 경조사, 관리비 납부… 라고 하나씩 꼽으면서 생각해 보니, 저는 월급만 다 갖다 줄 뿐 뭐 하는 게 없고 집안 경영이랄 수 있는 일은 죄다 아내가 합니다. 물론 이런 저런 일이 있을 때 상의는 합니다만 그 때도 대부분 ‘자기가 알아서 해’라고 합니다. 쓰다보니 이거 영 쓸데없는 남편이로군요.

하지만 100%는 아니어도 90% 정도는 제가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설거지와 청소입니다. 어, 그런데 하나씩 따져보니 제가 하는 일도 좀 있긴 하네요. 집안에 디지털 기기 사고 유지 보수 하는 일, 못질하기, 전등갈기, 가구 옮기기… 와, 은근히 하는 일이 꽤 있네요(이렇게 해서라도 면피를 ㅜㅜ). 어쨌든 가끔 하는 저런 일 말고 제가 맡아서 하는 일은 설거지와 청소, 딱 두 개입니다.

응? 뭐야? 아빠가 딸에게 설거지를 가르치라는 얘기야?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우리 딸은 설거지 같은 거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손에 물 묻히지 않고 마님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말도 안되는 소망이지요. 제가 일부러 더 설거지를 하는 건, 남자들도 집안 일을 나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집안 일 할 때 절대로 ‘도와준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아빠가 ‘한다’고 하지요. 집안 일은 누가 하고 누가 돕는 문제가 아닙니다. 식구들이 다 같이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덕분에 딸 아이는 설거지와 청소는 으레 아빠가 하는 일인 줄 압니다(하긴 그나마도 아빠가 주말에 집에 있을 때나 하는 거지만요). 주말에 제가 가끔 꾀가 나서 가위 바위 보로 설거지 하자고 하면 쌩~하고 도망갑니다. 용돈으로 꼬셔도 꿈쩍 안 합니다. 그래도 아빠가 자꾸 조르면 이렇게 받아칩니다. ‘평일 저녁엔 내가 설거지 하거든?’ 아빠는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출근합니다만, 가끔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점심 설거지를 못하고 갑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어느 날 부턴가 이걸 치우기 시작했던 거지요. 꿍얼거릴 법도 한데, 아무 소리 안하고 깨끗이 치워 놓는 아이를 보니 그저 대견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도 대견한 건 이 녀석이 설거지를 ‘엄마’일이 아니라 집안 일이라고 생각해서 치웠다는 겁니다.

아빠들은 설거지, 청소 뿐 아니라 집안 일 좀 더 해야 합니다(솔직히 저도 반성 많이 합니다). 특히 아들 있는 아빠들은 더 열심히 하세요 ^^. 아들들이 집안 일을 ‘여자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우리 일’이라고 생각할 때 딸들이 더 행복해집니다. 아들만 있는 아빠들은 시키지 말아야지 라고 마음 먹으셨겠으나 ^^ 아마도 다 아실 겁니다. 딸이, 엄마가, 아내가, 며느리가 행복해야 그 집안이 더 행복하다는 걸요. 아빠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이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  FIN
  • BlogIcon 네모 2011.03.04 01:30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돕는다는 말을 참 싫어합니다. 돕는다... 남의 일에 힘을 보탠다는 말이죠. '남의 일'이라는 말, 나와 남을 구분하는 건 언제나 참 차갑고 매정한 말입니다.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죠. 저와 비슷한 생각이 나타난 글을 읽고 묘한 느낌을 받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latinamericastory.com BlogIcon juanpsh 2011.03.06 03:31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서 참 많이 다퉜답니다.
    지금은 저두 설걷이와 청소는 제가 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빨래 너는것과 거두는 것, 그리고 접어서 수납공간에 정리하는 것도 제 몫일 때가 많구요.
    그래도 꿋꿋이 음식하는 것 만큼은 철저하게 와이프를 부려먹습니다. ㅋㅋㅋ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03.06 15:57 신고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 블로그 참 멋있게 꾸며두셨네요~ ^^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BlogIcon 그린데이 2011.09.11 09:02 ADDR 수정/삭제 답글

    제가 이 글을 왜 지금 봤을까요. ^^
    저도 레이님처럼 바른 부모가 되어야 할텐데... 항상 많이 배웁니다.

    벌써 내일이 추석이네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곧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