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부는 날, 창모루에 갔다

봄바람이 불 때면 누구나 바람을 쐬고 싶은 법이다. 아침에 껴입은 두터운 외투가 낮이 되면 부끄러워지는 4월, 그냥 잠깐이나마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영혼이 자유롭다고 해도 몸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그저 한숨으로 바람을 내고 있는데 A가 말했다. 창모루 어때? 대단한 인물이다. 어쩜 그렇게 딱 좋은 집을 골라내는지. 


창모루는 올림픽대로 동쪽 끝, 미사리 지나 팔당대교로 꺾어 올라가는 그 코너에 있다. 멀지도 않고 바람 쐬며 드라이브 하기에 딱 좋은 거리에 있는 셈이다. 단점은 차로 가야 하니까 누군가 한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물론 대리를 부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만다. 왜냐고? 이 얘긴 나중에 다시. 


창모루의 메인 메뉴는 매콤한 해물 칼국수다. 국수 대신 수제비를 넣기도 하고, 수제비와 국수를 다 넣기도 한다. 이름하여 칼제비. 국수도 좋아하고 수제비도 좋아하는 우리는 당연히 칼제비. 그것도 딱 1인분만 시킨다.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칼제비에 뿌릴 김가루가 한 접시 가득 나오고 잠시 후 노란 양은냄비에 담긴 칼제비가 나온다. 유부로 덮여 있어 안에 들은 건 잘 보이지 않지만 수제비와 국수가 잘 들어 있다. 금세 팔팔 끓어오르는 칼제비를 보고 있다가 적당한 때 김가루를 붓는다. 김가루는 얼마든 더 준다. 대신 셀프다. 김가루 좋아하는 우리는 한 접시 더.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려 소주를 한 잔 청한다. 오늘 운전은 A가 당첨.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먹을 수 있는 난 신났다. 면과 수제비가 채 익기도 전에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총각김치 한 쪽을 집었다. 김치와 먹는 소주는 좀 처량하지만(!) 김치 뒤에 또 다른 안주가 있을 땐 김치도 성급한 술잔을 달랠 좋은 안주인 법이다. 뭔 말이냐고? 김치 맛 괜찮다는 얘기다. 



국수와 수제비가 익기를 기다려 한 숟가락 들었다. 앗 뜨거 하면서도 호호 불어 먹는다. 나름 바지락과 새우, 오징어가 들어간 매콤한 국물이 괜찮다. 김가루와 유부도 잘 어울리고. 소주 안주로 삼기에 이만한 국수도 드물다. 호호 불어 국수와 수제비를 건져 먹을 무렵, 감자전이 나왔다. 



이 집 감자전의 특징은 크다는 거다. 왕돈까스를 담을 만한 접시를 꽉 채운 감자전. 맛은 뭐 흔한 감자전 맛하고 다를 바 없지만 노릇노릇한 감자전을 찢어 입에 넣으면 쫀득쫀득하면서 풍성한 느낌이 든다. 바로 이게 감자전 맛이니까. 칼제비를 1인분만 시킨 건 바로 이 감자전 때문이다. 창모루 처음 왔을 때 칼제비 2인분에 감자전 시켰다가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얼마나 아까왔든지. 


마지막 술잔을 털고 칼제비 국물까지 싹싹 긁은 뒤 남은 감자전 한 쪽을 입에 넣으면 식사 끝. 알콜의 힘과 얼큰한 칼제비 뒷맛, 감자전의 묵직함이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먹고 나오면서 내는 돈은 칼제비 6천원, 감자전 1만원, 소주 3천원. 합해서 만구천원이다. 이래서 대리를 부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게다. 


A의 투덜거림을 귓전으로 흘리고 다시 올림픽대로를 돌아 오는 길, 살짝 연 창으로 봄바람이 들어왔다. 흐뭇했다. 그저 흐뭇하단 말 외에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를 뿐이다. / Fin 


덧> 쓰고 나니 이 집엔 해물칼xx 시리즈와 감자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집에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계란말이(!), 닭발, 오돌뼈, 꼼장어 같은 포장마차 메뉴도 있습니다~ ^^ 

개츠비와 칵테일 #3 - 민트 줄렙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를 초대하고 톰은 진리키를 대접합니다. 그러나 더위에 지친 데이지는 자꾸 시내로 나가자고 조르고 그 과정에서 남편인 톰이 보는 앞에서 개츠비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지요. 


"당신은 멋져요" 데이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셈이었고 톰 뷰캐넌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 분위기는 슬슬 대형 사고를 치기 직전으로 달아오릅니다. 빈정이 상한 톰은 시내로 나가자며 위스키 한 병을 챙겼고 일행은 차를 나눠 타고 데이지가 추천한대로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를 고르다가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으로 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도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략. ㅋ 그리고 등장한 술이 민트 줄렙입니다. 


민트 줄렙은 이름처럼 민트를 넣은 칵테일입니다. 미국 남부에서 시작한 칵테일로 버번 위스키와 민트, 설탕으로 만들지요. 



온더락스 만한 잔에 위스키를 15ml 정도 붓고 민트 잎, 설탕 2스푼 정도를 넣은 후 잘 찧어줍니다(뭐, 머들러라는 전문 기구가 있으면 좋겠으나 없으면 나무 젓가락 뒤로 찧어도 됩니다 ^^). 적당히 찧고 설탕도 어느 정도 녹은 듯 하면(다 녹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설탕 가루 남아 있는 게 또 나름 매력이니까요) 얼음으로(기왕이면 잘게 부순 얼음) 잔을 채우고 위스키를 30ml 더 붓습니다. 그리고 잘 저어준 후 민트 잎으로 장식하면 끝. 얼음이 적당히 녹아 시원한 느낌이 들 때까지 저으면 됩니다만, 뭐… 내키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게 민트 줄렙입니다. 줄렙은 쓴 약을 먹은 후 마시는 달콤한 음료를 말하는 아라비아어랍니다(요건 인터넷 검색 ㅜㅜ). 


이름은 한없이 달콤해 보이나 위스키 45ml에 민트 잎과 설탕 밖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므로 사실 꽤 독한 술입니다. 그래서 물이나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부어 마시기도 합니다. 여튼 만만한 술이 아니어서 무더운 날 마시면 훅 올라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그저 민트잎과 얼음으로만 만들 것을 암시합니다. 


"웨이터가 노크를 하더니 으깬 민트와 얼음을 들고 들어왔다."


여기서 제 고민은 왜 피츠제랄드가 하고 많은 술 중에 민트 줄렙을 골랐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보자면…


버번 위스키로 만든 민트 줄렙은 가장 미국적인 칵테일 중 하나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데이지를 사이에 두고 톰과 개츠비가 다투는 장면을 자극하기엔 민트 줄렙의 독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겠다 라고도 생각합니다. 경계를 넘어선 사랑이란, 독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할테니까요. 뭐,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  


그러나 결국 주인공들은 민트 줄렙은 입에 대지도 못한 채 파국을 향해 달려 갑니다. 사실 민트 줄렙을 마셨으면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음주운전 때문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을 텐데, 책에선 '위스키를 따지도 않았다'고 했으니 음주운전은 아니었겠네요. 


참고로 칵테일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30ml다 45ml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재서 마시란 말이냐, 하고 따지실 수 있겠습니다. 골치 아플 거 없습니다. 집에 양주잔 하나 정도는 다 있으시지요? 그게 한 잔에 30ml입니다. 그러니 30ml를 넣으려면 한 잔 넣으면 되고 45ml를 넣으려면 한 잔 반 넣으면 됩니다. ^^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