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휴양지로 탈바꿈하는 라스베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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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박과 환락의 도시로 알려진 라스베이거스. 그러나 최근 라스베이거스는 과거의 우울한 이미지를 벗고 가족을 위한 리조트로 탈바꿈 하고 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아이와 가족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끊임없이 개발하면서 '리조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그렇게 탈바꿈하는 노력의 주역은 무엇보다도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호텔들이다.

솔직히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의 탈바꿈 시도가 가족까지 몰고 와서 도박을 즐기라는 것인지는 몰라도 -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이 이미 이름난 도박꾼들에게는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 어쨌거나 가족들이 함께 무언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저마다 테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아더왕과 중세유럽을 테마로 한 엑스칼리버, 라스베이거스의 기적을 의미하는 미라지, 아라비안나이트를 재현하는 알라딘, 라스베이거스의 이탈리아 베네치안, 보물이 가득한 섬 트레저아일랜드. 이집트 피라미드와 똑같이 만들어진 룩소, 뉴욕의 유명한 건물들을 본따 만든 뉴욕뉴욕, 에펠탑과 개선문으로 치장한 파리스, 로마 시대의 웅장함을 묘사한 시저스팰리스... 수많은 호텔 중에서 손님을 끌기 위한 마케팅이었겠지만, 그래도 그 규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수많은 호텔들이 서로 가까이 있고 지하로 연결되면서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의 지하는 거대한 도박 세상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도박장을 걸어 다른 끝으로 나가면 그 곳에선 또 다른 호텔의 도박장이 시작된다. 그 곳에선 오늘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재미로, 혹은 중독으로 당기고, 던지고, 소리친다. / FIN

누구나 다 아는 얘기긴 하겠지만,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의 도박장에서는 누구에게나 맥주를 비롯한 각종 음료가 무료로 제공된다. 맥주가 마시고 싶어 괜히 호텔 바에 들어갔다간 팝콘도 없는 맥주를 비싼 돈을 주고 마셔야 한다. 아무 슬롯 머신이나 자리 잡고 앉아 파격적인 복장의 웨이트리스에게 간단히 주문만 하면 된다. 넓은 도박장을 돌아다니느라 웨이트리스가 좀 천천히 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꼭 가져다 주기는 한다. 음료 값은 없지만, 주문 1건당 1달러 정도의 팁은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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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damdong.tistory.com BlogIcon damdong 2008.01.02 04:02 ADDR 수정/삭제 답글

    공감합니다. 리조트와 각종 쇼 매출이 이미 카지노 매출을 초월했고, 라스베가스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만 자그마치 27만개라고 합니다. ^^;

PDA로 영화 보기

 
PDA는 원래 Personal Data Assistance의 약자다. 개인을 위한 데이터 처리 보조 기구라는 뜻일테다. 그래서 처음 PDA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전자수첩처럼 사용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용도로 쓰자고 많이 우기기도 했고. 그런데 쓰다 보니 영 아니다. 일일이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도 불편하고 한 번의 실수로 모두 날려 먹기도 일쑤다. 그냥 PDA 처음에 사서 몇 번 입력해 보는 그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신기했고 마냥 자랑스러웠던 PDA가 나중엔 애물 단지가 되고 만다.

나는 PDA로 주소록이나 일정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내가 PDA까지 써서 관리할 주소록이 몇 백개 되는 건 아니고 - 세어 보니 삼백여개가 들어있긴 하지만, 실제로 이 중에서 필요한 건 몇 개나 될까 ^^ - 일정이 너무 바빠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도 아니다. 그러니 PDA는 애당초 나에게 이런 목적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난 PDA를 크게 두 가지 용도로 써왔다. 하나는 전자책이다. PDA에 텍스트 파일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책을 읽어댔다. 작은 화면을 통해 봐야 하고 다듬어 지지 않은 텍스트 파일로 읽어야 하니 좀 불편하긴 하지만 익숙해지니 가지고 다니기에 너무 좋았다.

두번째는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이다. 선물 받은 블루투스 GPS 수신기와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했다. 이 넘만 있으면 아무리 초행길이라도 겁이 안 나니 아주 유용하게 쓰는 셈이다.

가끔 엠피쓰리 음악을 듣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이건 어쩌다가 하는 정도이니 주 용도라고 할 수는 없겠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들어 PDA로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다름 아닌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DMB다 PSP다 PMP다 다양한 모바일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요즘은 지하철에서 심심찮게 TV나 영화를 보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됐다. 원래 TV야 좋아하질 않으니 상관 없다 쳐도 영화를 본다는 건 참 매력있는 일이다 싶었다.

물론 PDA로 영화를 보는 일이 가능했다. PDA 동호회 등에 가보면 PDA 용으로 영화를 인코딩해서 올려 놓은 경우도 있으니 이를 다운 받아 보면 된다. 그런데 저작권 법이 강화되면서 이런 PDA용 영상들이 많이 없어지고, 또 내가 보고 싶은 걸 마음대로 볼 수 없으니 자연스레 PDA로 영화 보기는 포기해야만 했었다.

PDA로 영화를 보려면 우선 영화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PDA에서 사용하는 메모리라는게 끽해야 1GB 정도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데 PC용으로 만들어진 동영상들은 기본 용량이 700MB다. 700MB 파일을 복사했다고 해도 PDA의 CPU가 이를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시간이 무쟈게 오래 걸린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동영상 사이즈도 줄이고 화질도 낮추고 오디오 품질도 적당히 내려서 파일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물론 줄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있기는 했는데, 사용법이 만만찮게 까다로왔다. 그러니 PDA로 영화를 본다는 건 그야말로 선수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PDA 사이트에서 '바닥'이라는 인코딩 프로그램을 찾았다. 세상에~ 컴퓨터용 동영상 파일을 PDA에 맞게 변환해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이것저것 복잡한 걸 세팅할 일도 없고 동영상 파일과 자막 파일을 같은 폴더에 넣어두고 '바닥'에서 동영상 파일을 불러 변환시키기만 하면 된다. 기본 내용이 다 세팅 되어 있으므로 파일을 불러 변환시키면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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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메가 파일 하나 변환시키는데 30분이 채 못 걸리고 - 물론 이건 시스템 사양이나 여러가지 환경에 따라 달라질 터이다 ^^ - 용량은 십분의 일 수준으로 줄어든다. 대략 70-80메가 정도니 PDA의 CF나 SD 메모리에 넣어놓고 즐길만 하다. 참고로 바닥 홈페이지는
http://www.kipple.pe.kr/ 이다.

'바닥'으로 컴퓨터용 영화 파일을 PDA에서 볼 수 있게 변환 - 소위 말하는 인코딩 - 을 완료했다. 이제 이 파일을 PDA에서 열어보면 되는데, 아쉽게도 내 PDA에 내장된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는 avi 파일을 지원하지 않는다. wmv와 mp3 정도만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별도의 멀티미디어 재생 프로그램을 알아봐야 했다.

PDA 사이트에서 찾아낸 프로그램이 바로 tcpmp라는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영문 소프트웨인데 Dr.Mabin이라는 닉을 가진 분이 한글화했단다. 한글화 뿐만 아니라 코덱까지 포함해 놓은 버전이 PDA 사이트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 파일을 구해 설치하면 된다. 내가 설치한 최종 버전은 tcpmp 0.66m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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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면 무엇하리. 아직 PDA 화면 캡처 뜨는 방법을 몰라 그냥 디카로 들이댔다. 덕분에 화면이 좀 어두운 것이 탈이다. 그래도 대략 플레이어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화면 구성 자체는 별로 복잡할 것도 없다. 화면 아래쪽에 기본 메뉴와 재생 버튼 등이 들어 있다. 가만 보니 삼각형 버튼은 재생, 삼각형 두개는 빨리 감기, 네모는 정지 버튼일테고 그 옆에 화면 확대 버튼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아래와 같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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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세로가 바뀌면서 전체 화면 모드로 재생된다는 뜻이다. '바닥'에서 기본 값으로 인코딩 하니 이 화면 사이즈에 맞게 자막도 입혀져서 이렇게 봐야 자막이 제대로 보인다. 처음 사진처럼 놓고 보면 자막 글자가 깨져서 알아보기 힘들다.

화질은 좋다. 대신 화면 전환이 빠른 장면에서는 좀 대충 건너 뛰면서 볼 생각을 해야 한다. 작은 화면에 작은 파일 사이즈로 보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닌가. 나머지 다른 부분들에서는 충분히 영화를 감상할 만하다. 오늘 출근과 퇴근 길 지하철에서 나는 김용 원작의 의천도룡기 두 편을 볼 수 있었다.

파일을 변환해주고 이를 PDA로 복사하는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래도 작은 수고로 한 시간의 출근길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이 정도면 모바일 영화관 치고는 훌륭한 솔루션이다. ^^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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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아이 무선속도계 CC-MC100W 매뉴얼 활용편

캣아이 무선 속도계, 모델명 CC-MC100W 활용편을 살펴보자. 우선 속도계 세팅에 앞서 버튼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버튼이 몇 개 있는데, 속도계 전면에 Mode 버튼이 있고 아래쪽에 Start/Stop 버튼이 있다. Start/Stop이라고 써진 부분 아래쪽이 실제로 누를 수 있는 버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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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면 왼쪽에 노란색의 Light 버튼이 있고 그 반대쪽에 회색의 Menu 버튼이 있다. 노란색 버튼 아래쪽으로 보면 조그만 회색 버튼이 하나 있는데 이 버튼이 AC 버튼이다. 일단 버튼의 명칭만 알자. 이 버튼이 뭐하는 버튼인지는 매뉴얼 대로 따라 눌러 보면 다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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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를 끝냈으면 이제 속도계를 내 자전거에 맞게 세팅할 차례다. 구입한 채 처음 사용한다면 아직 속도계에는 Sleep라는 글자만 보일 뿐 다른 아무 것도 나타나 있지를 않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초기화 하는 일이다. 속도계 뒷 면에 보면 왼쪽 아래에 AC라는 회색 버튼이 있다. 클립이나 볼펜 혹은 샤프 처럼 끝이 날카로운 물건을 이용해 이 버튼을 한 번 꾹 눌러준다. 그러면 속도계가 완전 초기화 된다. 초기화 된다는 말은 모든 데이터 수치가 0으로, 시간은 0시 0분 0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초기화 하고 나면 화면에 Unit이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속도의 단위를 결정하라는 말이다. 킬로미터를 의미하는 km/h와 마일을 의미하는 mph 두 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마일 쓰는 거 봤나. 당연 km/h를 선택한다. 혹시라도 마일을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Mode 버튼을 눌러라. 누를 때마다 km/h와 mph가 번갈아 나타나게 된다.

Km/h를 선택하고 본체 뒷 면의 메뉴 버튼을 눌러야 세팅이 저장된다.

마지막 할 일은 타이어 크기를 입력하는 것.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정확한 사이즈를 입력해야 거리나 속도가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자기 타이어 사이즈를 알아야 하는데, 어려울 거 없다. 타이어 옆 면을 유심히 보면 뭐라고 잔뜩 써 있는데 거기서 ‘숫자 X 숫자’ 형태로 된 표시를 찾으면 된다. 대개 26 x 1.95 머 이딴 식으로 써 있는데 눈치를 슬쩍 보면 앞에 26이란 숫자는 바퀴의 지름을 말하는 것일 테고 뒤에 1.95라는 숫자는 바퀴의 두께를 말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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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는가? 그렇다면 다음 표에서 자기 타이어 사이즈가 어떤 넘인지 찾아 낸다. 타이어 사이즈를 골라내면 그 옆에 L(mm) 에 해당하는 숫자가 있다. 그 숫자를 입력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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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타이어에 해당하는 숫자를 찾았다면 다시 속도계를 보자. 처음에는 2096이라는 숫자가 나와 있고 맨 뒤에 숫자가 깜박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 때 Mode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맨 뒤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누를 때마다 숫자가 올라가는데 0-9까지 반복되므로 자기 타이어 숫자에 맞는 걸 고른다. 자기 타이어 숫자 끝 자리가 7이면, 7이 나올 때까지 Mode 버튼을 누르라는 말이다.


마지막 자리 숫자를 찾았으면 속도계 본체 밑에 있는 Start/Stop 버튼을 누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Start/Stop라는 글자가 써진 부분은 버튼이 아니다. 그 밑 부분이 버튼이다. 여기를 누르면 뒤에서 두 번째 자리 숫자가 깜박인다. 역시 Mode 버튼을 눌러 숫자를 조절한다.

이런 식으로 4자리 숫자를 자기 타이어 사이즈에 맞게 했다면 속도계 본체 뒷 면의 Menu 버튼을 누른다. 이제 바야흐로 자기 자전거에 맞게 세팅이 된 것이다. 뭐 여기서 틀렸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본체 뒷 면의 AC 버튼을 눌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되고, 나중에 또 고칠 수 있으니 일단 다음 단계로 가면 된다.

어쨌든 타이어 크기까지 맞게 입력했으면 일차 세팅이 완료된 셈이다. 여기까지 작업했다면 액정 화면엔 0이라는 숫자가 크게 보이고 그 밑에도 0:00 이라고 나왔을 텐데, 크게 보이는 숫자는 현재 속도이고 0:00은 현재 시간이다. 그런데 시간이 0시 0분이라고? 그래, 그래… 다음 단계는 시간을 맞출 차례다. 시계를 맞출 차례란 말씀이다.

우선 Mode 버튼을 한 번씩 눌러 보자. Mode 버튼을 누를 때마다 화면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게 뭔지는 알고 넘어가야 할 듯 싶다. 먼저 v자 모양의 아이콘이 나와 있고 00:00과 같은 식으로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면 이게 바로 현재 시간이다. 아직 시계를 맞추지 않았으니 이렇게 나올 수 밖에.

Mode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Tm 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안 봐도 Tm은 Time의 약자일 테고 자전거 주행 시간을 가리킨다. 자전거 출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그 시간을 보여주는게 Tm 기능이다. 0시간 0분 0초부터 9시간59분59초까지 기록할 수 있다. 9시간59분59초가 지나면 다시 0시간 0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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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Dst라고 나오는데 이건 Distance의 약자이겠지. 자전거 타고 달린 거리를 보여준다. 단위는 앞에서 km라고 선택했으니까 몇 점 몇 킬로 미터라고 읽으면 된다. 0킬로미터에서 999킬로미터까지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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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 버튼을 또 누르면 AV라고 나오는데 이건 Audio/Video를 뜻하는게 아니라 Average를 뜻한다. 난데없이 애버러지라니? ^^ 이건 다름 아닌, 자전거의 평균 주행 속도를 알려준다는 뜻이다. 0킬로미터에서 105.9 킬로미터까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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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 버튼을 또 누르면 Mx라고 나온다. 이건 Max의 약자로 지금까지 달린 것 중에서 최대 속도가 얼마인지를 보여준다. 과연 내 자전거가 최대 얼마까지의 속도를 낼 수 있나 궁금하지 않은가? 그 궁금함을 바로 풀어주는 것이 Mx 기능이다. 역시 105.9킬로미터까지 표시되는데 눈치를 보니, 이 속도계에서 표시할 수 있는 최대 속도가 105.9킬로미터, 마일로는 65.9마일인가 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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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누르면 Odo라고 나온다. 오도(Odo)는 자동차에서도 쓰이는 말로 누적 거리 합계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달린 총 거리를 표시해 주는 기능인데 99999km까지 표시할 수 있다. 10만 킬로미터가 되면 다시 0으로 돌아온다는 말일 테다. 그러면 10만 킬로를 넘으면 어떡하지? 라고 고민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자동차도 5년은 타야 10만 킬로미터를 넘을 수 있으니 그건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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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숨겨진 기능이 하나 더 있다. Mode 버튼을 짧게 누르지 말고 2초 정도 길게 누르면 Sub 메뉴로 들어간다. 이게 뭐냐 하면 시간과 거리와 평균 속도 표시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도중에 대구에서 부산까지 가는 속도를 따로 알고 싶다고 할 때 서브 메뉴를 사용하면 된다. 현재 측정 중인 데이터 외에 또 다른 데이터를 알고 싶을 때 Sub 메뉴를 사용해라.


눈치를 보니 Mode 버튼은 속도계의 여러 기능들을 바꿔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버튼이다. 그렇다면 속도계의 설정 상태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뒤쪽에 있는 Menu 버튼을 누르면 된다. Mode 버튼은 기능 바꾸기, Menu 버튼은 설정 바꾸기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이게 더 어렵나? 그럼 할 수 없고… ^^

시계 맞춰야 하는데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그럼 시계를 맞추러 한 번 가보도록 하자. 설정사항을 바꿔야 하는 것이니 이건 당연히 Menu 버튼을 눌러야 하겠지?

Menu 버튼을 처음 누르면 화면 왼쪽에 A와 B라는 글자가 나와 있고 A가 깜박인다. A 옆에는 Slct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눈치를 보니 Select의 약자인 듯 싶다. A와 B를 고르라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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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난데없이 A와 B는 왜 고르라고 하는 것일까? ^^ 이 속도계는 다른 두 대의 자전거혹은 두 개의 바퀴에서 쓸 수 있도록 타이어 사이즈를 2개까지 입력할 수 있게 해 놨다. 예를 들어 내가 26인치 자전거와 20인치 자전거를 가지고 있고 속도계 하나로 왔다갔다 사용하고 싶다고 하면 자주 사용하는 자전거는 A, 좀 덜 사용하는 자전거는 B로 세팅해서 타이어 값을 넣어 놓으면 된다. 그런데 솔직히 말이 두 대 혹은 바퀴 두 개지… 속도계 쓰려면 센서 옮겨 달아야 하고 뭐하고… 설치가 장난 아니다. 그러니 두 대 쓸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을 듯… 어쨌든 서로 다른 바퀴 사이즈를 입력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 알아 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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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대부분은 바퀴 사이즈가 하나 일 테니 A를 선택하고 넘어간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버튼은 Mode 버튼이다. Mode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바퀴 모양 아이콘이 깜박이면서 4자리 숫자가 나타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숫자다. 옳지, 아까 처음에 입력한 타이어 크기다. 만일 거기서 타이어 크기를 잘못 입력했거나, 혹은 자전거가 바뀌어서 타이어 사이즈를 바꿔야 한다면 여기서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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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아이콘이 깜박일 때 Start/Stop 버튼을 누르면 맨 마지막 수가 깜박인다. 앞에서 이 숫자를 변경하려면 Mode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다. 내 타이어에 맞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Mode 버튼을 누르고, 세 번째 자리 숫자를 바꾸려면 Start/Stop 버튼을 누른다. 이런 식으로 Mode 버튼과 Start/Stop 버튼을 눌러 가면서 타이어 사이즈를 입력한다. 타이어 사이즈를 제대로 입력했으면 반드시 Menu 버튼을 눌러 설정 내용을 저장해야 한다.


타이어 사이즈를 바꿀 필요가 없거나 바꾸고 Menu 버튼을 눌렀다면 Mode 버튼을 눌러 다음 단계로 간다. 다시 Slct 글자가 나오면서 화면 오른쪽에 AT라는 글자가 깜박인다. AT는 Auto의 약자처럼 보이지 않는가? 역시 오토 모드를 선택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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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 모드는 자전거가 출발하게 되면 시간과 거리 등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능이다. Auto 모드를 켜 두면 출발할 때, 정지할 때 일일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속도계가 알아서 한다. 만일 Auto 모드를 꺼두면 출발할 때, 정지할 때 Start/Stop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간혹 정확한 시작과 끝 지점을 표시해야 할 때, 그럴 때 오토 모드를 꺼둘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켜두는게 편리하다. AT가 깜박이는 상황에서 Start/Stop 버튼을 누를 때마다 On과 Off가 번갈아 나온다. 원하는 모드에 맞추고 Menu 버튼을 누르면 저장된다.


변경하지 않거나, 이미 변경해서 저장했다면 다시 Mode 버튼을 누르자. 24h라는 글자가 크게 보이는데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계 맞추는 기능이 드디어 나왔다. 시간을 맞추려면 여기서 Start/Stop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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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24h라는 숫자가 깜박이는데, 이건 시계를 24시간 형태로 볼 거냐 12시간 형태로 볼거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오후 1시를 13시로 표시할 거냐 1시로 표시할 거냐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24h가 깜박일 때 Mode를 누르면 12h로 숫자가 바뀐다. 원하는 표시 방식을 선택한 후에 다시 Start/Stop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깜빡이고 Mode 버튼을 눌러 원하는 숫자를 찾는다. 원하는 숫자가 나왔으면 다시 Start/Stop 버튼을 눌러 분을 맞추고 시간을 다 맞췄으면 본체 뒤의 Menu 버튼을 눌러 시간을 저장한다.


시간을 다 저장했으면 Mode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Odo 미터를 바꿀 수 있는 메뉴로 들어가는데 배터리가 다 되었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총 누적거리가 지워졌을 경우 누적거리를 다시 입력하는 메뉴이다. 자동차는 총 주행거리를 바꾸면 안되지만, 속도계야 뭐 내 맘대로 아닌가? ^^

바꾸는 법은 타이어 사이즈 바꾸기와 마찬가지다. Mode 버튼을 눌러 숫자를 바꾸고 Start/Stop 버튼을 눌러 숫자 자리를 이동하면 된다. 역시 원하는 숫자를 입력했으면 Menu 버튼을 눌러 저장하기를 잊지 않는다.

Mode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킬로미터와 마일을 선택하는 화면이 나온다. 필요하다면 Start/Stop 버튼을 눌러 바꿔준다. 역시 Menu 버튼을 눌러야 설정이 저장된다.

여기까지 한 바퀴 돌았으면 기본 세팅은 다 된 셈이다. 이제 속도계를 자전거에 달고 열심히 달리면 된다. 속도계를 제대로 설치했다면 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속도와 시간이 알아서 척척 변할 것이다. 숫자가 변하면, 자전거도 그만큼 재미있어 진다.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은 리셋하기다. 주행 시간과 주행 거리, 평균 시간, 최대 속도 등은 이전에 타던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어 이 기록을 지우지 않으면 여기에 추가로 기록된다. 아침에 출근할 때 25km / 한 시간 30분을 기록했는데 이 내용을 지우지 않으면 퇴근할 때 이 다음부터 데이터가 기록된다는 뜻이다.

Mode 버튼과 Start/Stop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Tm / Dst / Av / Mx 네 가지 데이터가 0으로 초기화 된다. 총 누적 거리인 Odo 미터는 초기화 되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눌러도 된다. Sub 메뉴를 초기화 하려면 Mode 버튼과 Start/Stop 버튼을 2초 정도 길게 누른다.

총 누적 거리인 Odo 미터까지 초기화 하려면 본체 뒤에 있는 AC 버튼을 누른다. 데이터가 모조리 0으로 지워진다. 심지어 시간까지 0시 0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노란색 버튼 Light를 누르면 액정에 3초 동안 불이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밤에 유용한 기능인데 너무 짧다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함께 들어있는 매뉴얼이 부실하다는 생각은 드는 건 아니지만 그럼 뭐하랴. 다만 한글이 없어서 좀 유심히 봐야 한다는 점이 짜증나게 한다. 설치 과정이나 조절 방법도 그림으로 나와 있는데, 때론 그림 보다는 글로 풀어 설명하는 게 쉬울 때도 있다(아님 할 수 없고…^^). 그래서 쓰다 보니, 어느 틈에 몇 페이지를 넘기고 말았다.

나도 이 속도계를 오래 써 본 건 아니어서 리뷰는 좀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 쓰지 않았고 조작 방법에 대해서 정리를 좀 했다. 써 보면서 리뷰는 천천히 써야지… 어쨌거나 캣아이 마이크로 와이어리스 속도계 쓰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 괭이눈 2009.05.22 07:00 ADDR 수정/삭제 답글

    속도계 구입후 셋팅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ㅎ
    정말 간단하게 완료했네요 ^^ 잘 보고 갑니다ㅎㅎ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5.22 10:36 신고 수정/삭제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

  • Favicon of http://blog.naver.com/poleepolee/90048416887 BlogIcon 데이브릭 2009.06.05 16:36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자료 담아갑니다.
    남들 속도계 40~50찍힐때 제꺼 20~30 찍혀서 고장났나 했는데
    마일로 표시되있더군요 ㅋㅋ

  • 김완수 2009.06.13 23:51 ADDR 수정/삭제 답글

    예전 글이지만 이번에 속도계를 처음사서 세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승욱 2009.08.18 17:46 ADDR 수정/삭제 답글

    구매해서 세팅이 어려워 검색으로 찾았는데, 아주 황금같은 자료네요...^^
    덕분에 무사히 세팅완료해서 사용합니다. 감사합니다...(제 블로그에 링크도 추가해도 괜찮으시죠? ^^)

  • 2009.11.04 12:55 ADDR 수정/삭제 답글

    유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장대보이 2010.03.22 17:31 ADDR 수정/삭제 답글

    속도계의 자세한사용설명 감사드립니다.
    아주 유용하게 잘보고 있습니다....^^*

  • 빠꾸 2010.05.29 15:27 ADDR 수정/삭제 답글

    속도계사서 설치 막 끝냈는데 영문 매뉴얼이라 긴가민가 하다가 서핑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그냥 한글번역 매뉴얼구했는데 이렇게 설명하시니깐 쏙쏙 들어옵니다
    큰도움이 되었습니다
    안전라이딩하세요

  • 조셉 2010.06.21 02:11 ADDR 수정/삭제 답글

    밧데리 바꾸고 남감했는데 정말 도움되었읍니다. 감사합니다.

  • 늉늉 2010.06.21 18:56 ADDR 수정/삭제 답글

    혹시 끄거나 키는 기능이 없나요??

    • d호녀우 2010.08.01 13:15 수정/삭제

      메뉴버튼을 꾹 누르시면 됩니다 ^^*

  • ㅎㅇ 2011.07.04 22:48 ADDR 수정/삭제 답글

    저 좀 도와주세요. 달서구 감삼동에 살고 있구여 머가 잘못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 승휴 2012.08.04 17:46 ADDR 수정/삭제 답글

    영문 메뉴얼 뭐라카는지 하나도 몰겠고, 메뉴얼도 이상하고 해서 마일로 계속 타고다녔는데
    너무너무 알기쉬운 풀이 감사합니다~

  • lv.0 2012.08.29 09:48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감사합니다.
    자꾸 에러나서 리셋하는걸 몰랐는데
    이거 보고 그대로 따라했어요 ㅋ
    리셋이 마지막에 나와서 총 누적거리는 날라갔지만서도 ㅋㅋㅋ
    몇인지 까먹었음 ㅜㅜ
    암튼 친절한 설명덕에 감사합니다.

  • BlogIcon 박재형 2014.10.06 09:53 ADDR 수정/삭제 답글

    굿입니다

  • BJKIM 2014.10.18 08:53 ADDR 수정/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BlogIcon 경무 2014.11.18 16:36 ADDR 수정/삭제 답글

    휼륭한 설명 감사합니다. 근데 제 타이어는 27.5사이즈 인데 여기에서는 없는것 같은데 어떻하면 되죠??

  • BlogIcon 독일제 2016.03.13 20:57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아쉬웠는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송인수 2016.03.20 17:22 ADDR 수정/삭제 답글

    백라이트가 3초이상 커진채로 유지가 안되는데 어떻게해야하나요?

  • 구하라 2016.07.08 09:03 ADDR 수정/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설명 감사합니다 ㅠㅠ!!! 저기 나와있는 설명서에 바퀴사이즈표 좀 퍼가겠습니다ㅠㅠ!!

  • 시오 2016.08.01 15:53 ADDR 수정/삭제 답글

    넘 감사해요~ 아주 유용하세 쓸수있겠어여..

진정한 기자란 무엇일까

블로거는 기자일까 아닐까. 누구나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자신의 주장을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새삼 블로거를 기자로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이 치열하다. 특히 기득권 언론에 대항하는 인터넷 언론이 대거 등장하면서 과연 어디까지 기자로 인정해야 하느냐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자면 어떻고 아니면 어떨까. 그런데 왜 기자냐 아니냐 논쟁이 시끄러운 것일까. 그것은 기자에게는 무언가 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특별한 혜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질문에 대한 즉답이 어려우면, 질문의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블로거가 기자일까 아닐까를 떠나, 도대체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국어사전이라도 찾아 보자.

기자 [記者]
기자(記者)[명사] 신문˙잡지˙방송 등에서 기사(記事)를 모으거나 쓰거나 하는 사람.


아주 단순 명료하다. 기사를 모으거나 쓰는 사람이란다. 또 다른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기자 [記者, 記 적을, 기억할 기 者 놈, 것 자]
기자(記者) (1) 기사를 취재하여 편집하는 등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 취재 ~. 편집 ~. 신문 ~. 방송 ~. 잡지 ~. 사진 ~. 종군 ~.


적는 사람이란다. 적는 사람… 이걸 약간 뒤집어 생각해 보자. ‘신문, 잡지, 방송 등’이라는 표현은 한 마디로 줄여 요약하면 ‘매체’ 영어로는 media라는 말이다. ‘매체’란 어떤 작용을 다른 곳으로 전하는 구실을 하는 물체란다. 즉,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이 매체라는 말이다. 아무 거나 전달한다고 다 매체라고 하지는 않을 터. 신문, 잡지, 방송이 전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걸 다 전달하겠지만 이 역시 요약하면 ‘정보’일 것이다. 매체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기자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만드는 사람

자, 이걸 다 모아 정리하면 기자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아무리 잘난 짓을 해봐야 기자가 될 수 없다. 매체가 있고, 그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기자인 것이다. 예전에는 신문, 잡지, 방송 외에는 별 매체가 없었지만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매체가 있다. 그러니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 누구나 다 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 인터넷 언론이라고 말하고, 인터넷 기자라고 하고… 하여튼 많다.

쉽다. 아주 단순하다. 내가 글을 쓸 수 있고 매체가 있으니 글만 쓸 줄 알면 기자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그걸로 다 끝나는 것일까?

정보는 세가지 축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전달되고, 소비된다. 그 세 가지 축이란 다름 아닌 정보를 생산하는 축, 정보를 전달하는 축, 정보를 읽는 축이다. 쉽게 말하면, 기자와 매체와 독자의 세가지 축을 타고 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축에는 저마다의 책임이 있다.

정보를 순환시키는 세 축의 책임

정보를 생산하는 기자는 진실된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고, 감춰진 거짓말을 밝혀 내고 공공의 이익에 적합한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생산한 정보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고 누군가 피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신중하게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는 정보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생산하는 것은 기자지만 전달하는 것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매체가 아니었다면 그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을 테니 전달하기 전에 충분히 검증하고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매체는 기자를 선별할 때 고심하는 것이다. 일일이 기사를 검증할 수 없으므로 기자 개인을 검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민 기자를 내세우는 인터넷 매체들이 이런 점에서 취약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도 진정한 매체가 되려면 자신들을 통해 정보를 출판하는 기자들에 대한 기본 검증은 충분히 거쳐야 한다.

정보를 접하는 독자는 정보를 선택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정보를 읽고, 그 정보에 따라 어떤 행동을 했고,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 정보를 선택한 책임은 독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날 때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신뢰성을 한 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기자나 매체로부터 같은 얘기가 나올 때는 그 정보를 의심할 여지가 줄어들겠지만, 한 곳에서 흘러나온 정보는 신뢰성이 검증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정보를 선택했다는 것, 그것은 독자의 책임이다.

책임질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리하면 기자는 책임질 수 있는 자기만의 정보를 생산해 내는 사람이다. 그 아무리 유명한 신문 방송은 물론 유명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책임지지 못하는 글을 남발하는 이상, 그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매체의 힘을 업고, 기자라는 기득권으로 잔뜩 무장했다 하더라도 ‘~카더라, 아님 말고’ 식의 기사를 남발하는 이상, 그는 쓰레기를 생산하는 또 하나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또 그 정보를 이용해 먹는 사람은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그는 장사꾼일 따름이다. 그것도 아주 질 떨어지는.

진실한 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글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자신 있게 출판하는 사람, 우리는 이제 그를 기자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한 글을 모아 제공하는 매체를 진정한 미디어라 불러야 할 것이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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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blog.daum.net/ditqyd/5172146 BlogIcon 아리솔 2007.05.28 02:15 ADDR 수정/삭제 답글

    작년에 쓰씬 글인데 지금 봐도 배울 점이 있는 글이네요. 본질에 대한 문제는 시간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28 10:42 신고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배울 점^^이라고 하시니 괜히 송구스럽다는... ^^

  • Favicon of http://health.gamsa.net BlogIcon 양깡 2007.07.13 13:50 ADDR 수정/삭제 답글

    작년에 글을 쓰시다니...

    제가 지금에서야 고민하게 되는 주제입니다. 검색해보니 올해 5월에 이슈가 되었더군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j4blog.tistory.com BlogIcon moONFLOWer 2008.01.29 12:07 ADDR 수정/삭제 답글

    꽤 예전에 쓰신 글인데도 오늘 제 글과 일맥상통한 글이네요.
    이런 것이 집단 지성의 창조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마포 맛집] 질보다는 양. 해물찜 아름소

마포역 주변은 '마포음식거리'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음식점들이 모여 있습니다. 해마다 5월이면 음식문화축제를 열기도 할 정도로 음식점들이 가득하지요. 그 중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들도 있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인점들도 있고, 조금 조금 특색을 자랑하는 집들도 있고 그렇답니다.

해물을 좋아하는 미디어브레인 식구들에게 딱 걸린 집은, 바로 '아름소'라는 집입니다. 푸짐한 해물찜이 메인이라고 하구요, 그 때문에 언론에도 나고, 인터넷에서도 꽤들 찾아보신 집인 듯 합니다. 저희 브레인 중 한 명이 인터넷에서 보고, 오호, 이거 우리 구역인데? 하면서 찾아갔으니까요.

위치는 이렇습니다. 마포역 5번 출구 - 오벨리스크(한화에서 만든 주상복합 건물) 쪽 출구입니다 - 로 나오시면 어린이 놀이터가 보이고 앞 쪽으로 고기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호객 행위도 장난 아니더군요. ^^ 이 고기집들을 주욱 무시하고 오벨리스크를 등진 채, 오른쪽을 바라 보시면 원미 해물탕이라는 집이 보입니다. 이 집 해물탕도 좋은데, 이 얘긴 나중에 다시 올리구요, ^^ 여튼 원미 해물탕 옆에 장수 어쩌구 하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이 음식점 옆으로 난 골목길로 조금만 올라오시면 아름소가 보입니다. 찾기는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니구요. 하여튼 오벨리스크를 등지고 장수 어쩌구 음식점과 편의점 사이 골목길로 올라가세요.

이 집의 메인은 푸짐한 해물찜이랍니다. 얼마나 푸짐할까... 메뉴를 봤더니 '소'자가 2만8천원이랍니다. 남자 4명이 갔는데 '소'자 하나면 충분하다더군요. 도대체 얼마나 푸짐하길래 그런가 하면서 해물찜 '소'를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기본 찬이 나오면서 함께 나온 달걀찜입니다. 처음 한 번은 하나를 주고, 그 다음부터 추가하려면 개당 3천원이랍니다. 그러니 달걀찜 좋아한다고 마구 드시지는 마세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달걀찜을 먹고 있노라면 와~ 하고 입이 벌어질 만큼 커다란 접시에 해물찜이 담겨 나옵니다. 음식점 벽에 붙어 있는 모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니까 접시 지름이 40cm를 훌쩍 넘는다고 되어 있는 것 같던데, 하여튼 접시 크기로는 어마어마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으로는 잘 실감이 안 나시겠지만, 하여튼 테이블에 저 넘 하나 얹어 놓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지요. 자, 그럼 어떤 재료들이 들어가 있는지 볼까요?

사진에서 얼핏 봐도 홍합, 아구, 그리고 콩나물이 일단 보이는군요. ^^ 이 외에 조개류도 있고, 미더덕도 있고, 꽃게도 있습니다. 아마 낙지와 오징어도 있었던 듯...

맛은 어떨까요? 보통 해물찜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 나오긴 합니다만 정말 맛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굳이 맛 때문에 찾아가기에는 좀 부족한 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그랬을까요?

아무래도 가격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근 다른 집에서 해물찜은 '소'자가 3만원 정도이며 양은 아름소의 그것에 비해 반 정도 밖에 되질 않습니다. 아무리 박리다매를 한다고 해도, 가격에서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건 아무래도 재료에서 차이가 난다는 뜻이겠지요.

실제로 아름소 해물찜에 들어있는 꽃게... 몸통에 붙어 있는 다리 두 개가 전부였으며 다른 해물들의 맛도 그렇게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가격이 싼 만큼, 대신 재료의 퀄러티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런 추측이구요... 물론 훌륭한 양념과 찜 솜씨로 이런 걸 커버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일 테지요.

하지만 아름소의 해물찜엔 장점이 있습니다. 해물찜을 먹고 난 후 다른 데서는 보통 밥 정도를 볶아주지만 아름소에서는 밥은 물론, 떡이나 각종 면 사리들을 2-3천원 정도의 가격으로 다양하게 주문할 수 있다는 겁니다. 떡을 잘 볶으면 훌륭한 해물 떡볶이가 되는 셈이지요.

저럼한 가격으로 해물찜과 다양한 사리들을 경험할 수 있으니, 일단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집이라고 봐야겠지요? 대신에 해물찜의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가시면 실망하십니다. 넉넉한 양과 다양한 사리, 거기에 부담없는 가격을 원한다면 아름소가 그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 FIN

[마포 맛집] 매콤 시원한 사천탕면, 금송

 
대한민국 국민 음식 중 하나인 짜장면 덕분에,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중국 음식점을 찾는 건 그야 말로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색다른 맛을 내는 중국 음식점 찾기는 죽 만들기 만큼 어려울 터이다. 배달 위주의 식당들이 많은 탓에, 맛보다는 속도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달시키면 맛이 떨어질 수 밖에...

마포 음식 거리에 있는 금송. 화려한 간판 모양이 쉽게 눈길을 끈다. 마포역 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농협 건물을 끼고 우회전해서 들어오면 용강동, 토정동으로 향하는 마포 음식 거리가 나오는데 이 길로 300미터 정도 직진하다 보면 스포츠 시티라는 스포츠 센터 바로 직전에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집에서 요리는 먹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김치를 먹어보면 그 집 음식 맛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 음식점 맛은 짜장면을 비롯한 기본 식사 메뉴에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디 보자. (삼선)짜장면, (삼선)짬뽕, (삼선)볶음밥, 고추잡채밥, 마파두부밥, 사천탕면... 등등이 그 집에서 먹어본 식사 메뉴다.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식사 메뉴는 동네 중국집에서 먹는 맛보다 훨씬 깔끔하다는 것이다. 볶음밥 류는 비슷하지만, 짜장면과 짬뽕류는 으음, 맛있네~ 라는 감탄사를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중에서도 압권은 5천원짜리 사천탕면이다. 보기에는 우동국물 같지만 얼큰한 고추를 다진 양념이 넉넉히 들어가기 때문에 칼칼한 그 맛이 장난 아니다. 다 먹고 나면, 후추 맛이 강하게 난다는 느낌도 받기는 하지만, 넉넉하게 들어있는 쫄깃한 조개살과 함께 어~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다 보면 어느새 그릇은 바닥을 보이게 된다.

식당이 아무리 많아도 점심 메뉴를 고를 땐 항상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라면 금송의 사천탕면은 언제든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즐거운 식사 메뉴다. / FIN

운명 같은 사랑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소설의 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 존스 보다는 영화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어쩌면 실재 존재하는 그 다리들의 사진이 더 유명한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이곳 저곳 돌아디니며 사진을 찍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여자는 고향을 멀리 떠나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이미 오래 전에 정착해버린, 평범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그런 덤덤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단지 스치듯 만났을 뿐인데 둘은 운명처럼 사랑한다. 그것도 여자의 가족이 잠시 자리를 비운 단 나흘 동안 사랑을 한다. 단 나흘의 사랑... 남자는 여자에게 떠날 것을 간청하지만, 여자는 책임감 때문에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킨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나흘 동안의 감정을 평생동안 간직하며 그렇게 산다. 죽을 때까지 마음 속에 서로를 품었지만, 그리고 여자가 그 책임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와졌을 때 만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여자는 먼저 떠난 남자의 유품을 받고, 그 유품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는 남자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곧 여자도 남자의 뒤를 따른다.

시공사에서 나온 이 책은 단단한 하드 커버에 부담없이 손에 쥘 수 있는 두껍지 않은 책이다. 마음 잡고 한 두시간이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짧은 사랑과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평생 간직하는 두 사람의 마음에 차마 중간에서 내려 놓을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내세가 있다면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다시 만났을 것인가.
그래서일까. 한 손으로 책을 펼쳐 들고, 그녀 옆에 앉아 한 장 한 장 읽고 싶은 책이다. 두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우리에게 이입시키고, 그러면서 한 장 한 장 넘기고 싶은 책이다. 밤이 새도록 그녀 옆에서 읽으면서, 그들의 사랑을 따라가고 싶다. 

미디어브레인의 평점 별 4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읽어도 후회없는 책이다.

차 향에 푹 빠지는 곳, 보성 차밭 여행

보성이 그렇게 먼 줄 알았다면, 갈까 말까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길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알량한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믿고 올라탄 것이 애당초 실수인지도, 아니면 망설일 기회를 잃어버린, 외려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광고에 혹은 드라마에 나왔다는 그 차 밭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고속도로에 올라 내비게이션을 찍었을 때 나온 거리는 목적지까지 400km가 넘는다는 황당한 얘기였다. 그까짓거… 열심히 달리면 세 시간이면 가겠지~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다.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운전하는 시간 외에도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 배고프니 밥 먹는 시간 등등이 알게 모르게 달라 붙는다. 그러다 보면 목적지까지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처음 계획과 달리 한 시간 정도는 쉽게 늘어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보성은 광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면 금새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성은, 광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서도 한 시간은 달려야 나오는, 절대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세 시간이면 가겠거니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실제로 보성에 도착한 것은 출발하고도 다섯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솔직히 알량하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쉽게 찾았지, 만일 지도나 이정표만 의지했더라면 과연 제대로 찾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다. 고속도로를 지나 보성으로 가는 이정표가 드문 드문 보이고, 그나마 요즘들어 보성 차 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은 급조한 냄새가 나는 ‘보성차밭’ 표지판들이 도로 중간에 있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금새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보성을 찾은 기간은 ‘다향제’ 기간이었다. 축제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톨게이트부터 안내가 부실하다는 생각은 보성에 들어서서도 변하지 않았다. 안면도에서 무슨 축제를 한다고 했을 때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IC부터 나붙었던 안내 깃발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좀 뒤떨어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긴, 다향제를 의식하고 차 밭을 보러 간 건 아니었으니, 다향제에서 뭘 한다 해도 사실 관심은 별로 없었다. 광고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냥 그렇게 시원한 느낌을 주는 차 밭에서 마음 속 고민을 모두 털어버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복잡한 머리 속을 식히는 것, 그게 보성 차 밭을 찾은 첫 번째 이유였다.

보성에 들어서서 차 밭 표지판을 따라 주욱 올라 가다 보니, 갑자기 차들이 많아지고 경찰이 나와 길 안내를 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눈치를 보니 이 곳이 다향제를 하는 무슨 공설운동장 같은 분위기였다. 바깥에서 보니 천막들이 쳐 있고 사람들이 웅성 웅성… 지방에서 열리는 여느 축제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축제에 목적이 없었으므로 이를 무시하고 곧바로 차 밭으로 가기로 했다. 미리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대한다업’이라는 곳이 보성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 했다. 때마침 내비게이션에도 ‘대한다업관광농원’이 버젓이 들어 있어 목적지로 찍어 놓고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알량한 내비게이션’ 이라는 표현이 또 다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건, 목적지에 다다라서였다. 정확한 지번을 실측하지 못해서인지 한적한 시골길이나 복잡한 이면 도로에 목적지가 있을 경우 내비게이션은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하면 대충 얼버무리면서 안내를 끝내 버린다. 목적지 주변에 오긴 왔는데 정확한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없어 헤메고 있어도 ‘목적지 부근에 왔으니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는 내비게이션을 보면 그냥 부셔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국도를 따라 오다 보니 오른쪽으로 우회전하는 길에 차들도 많이 들어가고 주차 안내원까지 있을 정도로 복잡한 농원 입구를 보긴 봤다. 표지판을 자세히 봤으면 그 곳이 대한다업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직진을 가리키고 있어서 무시하고 그냥 달렸던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쌩뚱 맞게도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준 곳에는 웬만큼 널찍한 주차장을 갖춘 차 밭이 하나 있기는 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차 밭이구나 하고는 차에서 내리긴 했는데, 웬지 모를 의심은 감출 수가 없었다.

여기가 대한다업일까 하고 봤는데 대한다업이 대자도 보이지 않고 봇재 어쩌구 저쩌구 하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눈치를 보니 ‘봇재다원’이라는 곳이었다. 광고나 드라마에 나온 곳들은 다 카메라로 장난 치는 거니까, 이 정도면 훌륭한 차 밭이네, 그냥 여기서 머무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차 밭에 올랐다.

차 밭은, 산을 깎아내고, 그 산을 모두 차 나무로 두른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산 한 쪽면이 온통 차 밭인 셈이다. 나즈막한 높이의 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장면, 실로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 진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간다. 차 나무를 즐기며, 시원한 공기를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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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전체가 차 밭이어서 시원한 느낌을 주는지는 몰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기대했던 차 밭은 아니었다. 이것 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기교를 살려 영상을 찍었다 해도 이 차 밭이 그렇게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뭔가 좀 어설프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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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일부를 담는 것보다 전체를 담는 것이 더 그럴 듯해 보이지 않을까 하고 카메라를 들었지만 역시 마찬가지. 그렇다고 해서 전혀 운치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저어기 멀리 가로등이 놓인 길을 걷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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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제'를 지금 하는 이유가 있단다. 4월말에서 5월초에 따는 차 잎을 '우전'이라고 부르는데 이 넘의 품질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다. 가까이서 본 차 나무 잎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뻣뻣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푸르름 만으로도 마냥 예뻐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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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 앞 주차장에 놓인 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흐드러지게 핀 붉은 꽃들은 푸르른 차 밭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서운했다. 아무래도 아까 올라오면서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던 길이 자꾸 신경 쓰였다. 가까운 데라면 몰라도 서울에서 다섯시간이나 걸려 왔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일단 사람 많은데라도 가면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봇재다원에서 2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앞에 세워 있는 간판, 대한다업이 맞았다. 오후 네시를 넘긴 시간이어서인지 아까보다는 들어가는 차들이 적어 외려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차를 몰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주차 요금을 받는 곳이 있었다. 주차 요금은 2천원.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안쪽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주차장 옆 공터에서 다향제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신났을 노래공연장, 녹차 관련 상품들을 파는 간이 매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향제는 공설운동장과 이곳 대한다업에서 나뉘어 열리고 있었다. 다향제 행사장을 지나 안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녹차밭으로 걸어가는데 웬지 느낌이 달랐다. 좀 전에 들렸던 다원은 도로 변에 있기도 해서 주변에 막힌 것이 없었는데, 이 곳은 울창한 숲으로 들러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울창한 나무 숲을 지나면 녹차밭이 눈 앞에 나타나는데, 아~ 바로 여기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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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둘어 쌓인 차 밭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굵고 크고 많은 차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산을 타고 조성된 차 밭을 따라 올라 가다 보면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되고, 그 굵직굵직함에 감탄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이 곳을 보지 않고 규모가 작은 곳을 먼저 보았던 까닭에 감탄이 늘기도 했겠지만,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고 지나지는 못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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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곳이 광고나 드라마를 찍었던 장소이리라. 차 밭에 묻혀 지나는 사람들이 저리 작게 보인다. 차 밭 사이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었던 봇재다원과 달리 이 곳에서는 차 밭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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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밭을 둘러 싸고 있는 숲도 장대하기만 하다. 차 밭과 숲, 때마침 피어오르는 물안개까지, 보성의 차 밭은 향기롭기만 했다. 아침이라면, 지금이 아침이었다면 그 느낌이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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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밭 옆으로 난 산책길이다. 휘톤치트라고 했던가. 나무에서 나는 그 특이한 향이 가득한, 그야 말로 천연의 삼림욕장이었다. 나무들 사이에서 그 진한 향을 맡으며 걷고 있자니 몸의 피곤함도, 마음의 무거움도 절로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보성의 또 다른 볼 거리는 율포해수욕장을 지나는 해안도로다. 대한다업 앞 도로로 나와 봇재다원을 지나고 계속 직진하면 율포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데 이 길의 전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산을 돌아 내려가다 보면 도로 변의 차 밭과 저수지를 낀 마을...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율포해수욕장. 전형적인 남해바다였다. 짙은 뻘 색의 바다가 살랑살랑 마음을 흔들고, 기다란 방파제 끝에 서서 바다 향을 맡으면 이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그 곳은 나를 쉬게 할 지언정, 내 삶의 터전은 아닐지니.

율포해수욕장을 지나 장흥 쪽으로 계속 들어가는 길은 아기자기한 해안도로다. 간간히 드러나는 바다와 또 그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엿보인다. 수문해수욕장에선 때마침 키조개 축제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선 그 가격에 키조개를 먹을 수 없겠지. 키조개 구이 한 접시와 소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면서 그렇게 보성 차 밭 여행은 막을 내려야 했다.

멀지만 않다면, 얼마든 가고 싶은 곳이 보성이지 않을까. 하루라는 짧은 여정에 아쉬움을 남기며, 그렇게 보성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버렸다. / FIN

나의 음주 편력기 #7 - 벤처기업편

배경 좋고 든든한 회사를 그만 뒀던 건, 벤처 엑소더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1999년의 흐름을 탔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겠지만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스타 벤처 기업이 등장하고 코스닥 등을 업은 벤처 기업의 성공 사례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대기업은 물론 일반 직장에서 잘 근무하던 젊은 사람들이 대거 벤처 기업으로 이동하는 ‘벤처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저 역시 다름 아니었습니다. 때 마침 코스닥에 등록한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회사 들어가게 된 것도 아주 웃깁니다. ^^ 제가 회사를 옮겼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걸 알고 있는, 이 회사에 먼저 들어가 있던 후배가 어느 날 저녁 저를 부르더군요. 자기네 회사 이사님하고 술 한 잔 하자는 겁니다. 저야 뭐 거부할 이유가 있습니까? 좋다고 쫓아갔죠.

삽겸살 집에서 소주가 두 병 정도 돌았습니다. 이 날 처음 뵈었지만, 그 뒤로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게 된 이 이사님은 소주는 별로 안 드시더군요. 그래서 술을 별로 안 드시나 보다, 생각하고, 적당히 먹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요. 그러다가 2차를 가자고 하시네요. 맥주집으로 옮겼습니다.

헉~ 이 이사님은 저하고 영 반대이신 분입니다. 소주는 안 드시고, 오로지 맥주파시더라구요. 어떻게 그 많은 맥주를 끊임없이 드시던지… 맥주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저는 억지로 억지로 따라가기에 바빴습니다. 그 많은 맥주를 다 처리하고, 소주 때문이든, 맥주 때문이든 얼큰하게 취한 후, 곧바로 3차로 이어집니다.

조그만 단란 주점이었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바로 폭탄주가 돕니다. 폭탄주 일배 돌고 난 후에, 이사님이 자기하고 일하고 싶은 생각 없냐고 물어봅니다. 저도 딱 한 가지만 물어봤습니다.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이렇게요. 군더더기 없이 그래~..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술 먹고~ 일주일 후에 저 그 회사 출근했습니다. ^^

벤처기업에서는 이렇게 일해야 돼~ 하는 생각으로 좀 오버 했습니다. 매일 같은 야근, 저녁식사 때마다 이어지는 반주 – 그런데 인당 소주 1병이 넘어가면 이건 반주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친거죠? ^^ - 들어와서 또 일하고, 열한시쯤 나가서 호프집에서 또 맥주 먹고, 2시쯤 사무실 들어와서 밤 새고…

매일 음주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정말로 그 기간 동안 일도 열심히 했고,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해서 술을 먹기 시작했던, 화려하고 무모한 음주 시대였습니다. 평일에는 술을 쉬어 본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직원들과 시끄러운 호프집에서의 난상토론, 협력하고자 하는 제휴 업체 사람들과의 만남…, 회사 임원 분들과의 뜨거운 논쟁… 하루도 술이 없이는 되지 않았던 그런 날들이었지요. 제가 살아오면서 그 때 만큼 열심히 일을 했고, 정열을 가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 회사를 떠나 있지만, 아직도 그 회사가 제 친정 같고, 사랑스러운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하루는 그 회사에 새로 높은 분이 오셔서 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경영 부문을 총괄하기 위해 외부에서 모신 분인데, 성품 좋으시고,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게 된 분입니다. 이 분 환영 자리에 팀장들이 죽 앉았었는데, 잔 도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장님의 작전이었는지, 파도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종은 바로 악명 높은 고량주였습니다.

중국집에서 고량주 파도타기라… 파도타기 아시죠? 처음 시작한 사람이 원샷 하면 줄줄이 이어서 원샷을 이어가는 그런 술 마시기 말입니다. 저는 고량주를 그렇게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11명 이서 고량주 24병을 먹었더군요. 파도타기를 하면 중간에 빠질 수가 없으니까 인당 두 병 정도씩 먹었다고 해야 겠죠… 그리고 나서 단란으로 옮겨 폭탄에, 노래에… 11시 반에 완전 전사했었습니다.

파도타기나 폭탄주 같은 문화가 직급 높은 사람들에게 좋은 거라는 사실을 이 때 알았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잔 돌리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직급 높은 사람한테 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똑같이 빨리 먹고, 빨리 가면, 아무래도 한 사람한테 잔이 집중되는 걸 막을 수 있겠지요.

매일 같이 먹기도 했지만, 다양하게 먹기도 한 탓에 많은 테크닉을 배웠습니다. 파도타기는 기본이고, 지난 번 폭탄주 얘기 때도 썼지만 메론주 같은 것들도 이 즈음 배운 것이지요. 배운 것은 또 바로 써 먹는다고 ^^ 저희 직원들이 요즘 저한테 이런 걸로 고문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저는 일주일에 4-5일을 먹게 되는 것 같은데, 운이 좋으면 한 달에 한 주 정도는 쉴 수 있습니다. 묘하게 이런 주가 한 번씩은 있어서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는 어떻게 술을 마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줄이긴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버티기가 쉽지 않네요.

술이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기도 하고, 부끄러움을 감싸 주기도 하고, 막힌 커뮤니케이션을 이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술 자리로 갑니다. 혹시 같이 가실렵니까? ^^

나의 음주편력기 End ^^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08.01.29 19:40 ADDR 수정/삭제 답글

    블코인터뷰 보고 들어오게 됐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제가 장식했군요^^
    저 때는 왜 그렇게 술을 마셨었는지 참..ㅎㅎ

    • Favicon of https://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1.29 19:45 신고 수정/삭제

      ㅋㅋ 사실 후속편을 이어써야 하는데 그 뒤로 제가 정신이 좀 없었더라는. ㅋㅋ

나의 음주 편력기 #6 - 에피소드 소주편

IMF를 겪으면서 소주와 친해지긴 했습니다만, 사실 소주에 얽힌 몇 가지 일들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첫 직장에서 소주로 엄청난 고문을 당한 탓이라서 그 이후 5-6년 동안 소주의 역겨움을 지우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러나, 엄연한 대한민국 현실 상 소주를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소주야 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술이며, 모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술이 아니겠습니까?

에피소드 1. 결혼한지 한 달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사촌 언니 내외가 저를 보고 싶다고, 저하고 같이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사촌 언니 내외, 우리 내외, 이렇게 4명이 충무로에 있는 고기집에서 만났습니다.

그 형님, 인상도 좋고, 말씀도 편하게 하시고, 참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다가 제가 붙임성이 좀 있는 편이어서 ^^ 소주 한 잔 받아 먹고 바로 형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고 엉겨붙었더니,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소주를 권커니 잣커니, 그러는데 어느 틈에 두 병이 비어버렸습니다. 인당 한 병씩 먹은 셈이죠.

그 때만 해도 제가 술을 많이 먹지 않았었고, 또 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연애하면서도 아내와 술을 같이 마신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내도 제가 술을 어느 정도 먹는지 잘 몰랐을 터이고, 같이 마주 않은 처형과 형님은 제가 주는 대로 넙죽 넙죽 받아 먹으니까, 당연히 잘 먹는 줄 알았겠죠.

사실 고역이었습니다만, 그 좋은 분위기를 깰 수 있겠습니까? 아마 소주가 한 병씩 더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소주로 주량을 맞춰 보지 않은 상황이라서 저는 또 주는 대로 넙죽 넙죽…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그 식당을 나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잠깐 깨 보니 노래방이더군요. 나중에 아내한테 들은 얘기로는 제가 노래방 가자고 우겨서 노래방 갔다는 겁니다. 노래방 가자구 해 놓구, 들어오자마자 저는 쓰러져 자구… 제 주량을 모르고 술을 먹였던 형님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그러니 노래가 될 리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제가 깨었던 모양입니다.

형님, 놀아야죠~ 말도 안되는 댄스 해가면서 혼자 노래 부르고, 나머지 세 명은 어쩔 수 없이(!) 분위기 맞춰 노래 부르고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는 또 기억이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를 타고 있었고, 여지없이 창 밖으로 웩웩 거리고 있었죠. 집에 와서 바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젠장, 아내한테 기대서 집에 들어오다니, 이건 또 웬 망신입니까?

그래도 주사는 없었든가 봅니다. 재미있었다고 그랬다는 군요. 아내도 제가 넙죽 넙죽 잘 먹길래 안말렸는데, 그렇게 못 먹는 줄 알았으면 말렸을 거라고 나중에야 얘기하더군요. 가끔 그 형님하고 술 한잔 더 해야지, 그렇게 아내한테 얘기하면, 그 형부는 아직도 당신이 술 못 먹는 줄 알아…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 뒤로 제가 급격하게 내공을 쌓아서 지금은 소주 두 병은 끄덕도 없으니, 아마 다음 번 대결은 해 볼 만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형님네 하고는 더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내한테 얘기해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에피소드 2. 지금은 연세도 많으시고 해서, 술을 별로 안 드시지만, 장인 어른은 애주가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인 어른들이 그렇듯이 사위만 오면 그렇게 술을 내서, 같이 즐기기를 좋아 하십니다. 저희 아버지도 저랑 술 먹자는 말씀은 잘 안 하면서 사위만 오면 집에 감춰둔 좋은 술 다 꺼내십니다. 장인 어른도 아들이 둘이나 있으셔도 아들하고 먹는 술은 재미가 없는지, 아니면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 무조건 대접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저만 가면 무조건 술상이 나옵니다. ^^

장인 어른하고 대작을 하면, 우선 썬키스트 오렌지 주스 잔에 소주를 따르십니다. 병권을 완벽하게 쥐고 똑같이 따르십니다. 역시 한 잔에 반 병씩 들어갑니다. 그걸 원샷 하는 건 아니구요, 천천히 먹기는 합니다만, 장인 어른하고 똑같이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제가 어느 정도 술에 내공이 받혀 있어서 뭐 별 무리 없이 다 쫓아 갑니다. 기분도 맞춰 드리고… 좋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김서방, 반주 해야지… 하시면서 아침 식사 반주로 똑같이 썬키스트 오렌지 주스 잔에 부으십니다. 휴~ 새벽 서너시까지 쉼 없이 술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아침 식전부터 소주 반병을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그래도, 다 먹었습니다. 그걸 먹고 속이 편하게 느껴지는 이른바 해장술의 맛을 느끼려는 경지에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거 먹고 아침부터 알딸딸해서 헤롱대는 걸 본 아내가 장인 어른한테 잔소리 하는 걸 옆 귀로 들으면서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내한테 잔소리를 많이 들으셨던 장인 어른은 그 뒤로는 아침 반주로 그렇게 많은 소주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 장인 어른 건강이 어서 좋아지셔서, 저하고 가볍게 반주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는 비록 잔소리를 하겠지만요.

나의 음주 편력기 #5 - IMF편

97년 10월, 미국에 출장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매년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쇼인, 컴덱스 쇼 관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컴덱스 쇼 잘 보고,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남들 다 보는 그렇고 그런 쇼(!)도 보고, 잘 놀다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조그맣고 깔끔한 인(아마, 미야코 인인가 그렇습니다)에 이틀 정도 여유가 있어서 묶었답니다. 낮에는 놀러 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미국 맥주라도 먹고 가야지, 하면서 슈퍼에서 미켈럽 하고 버드 같은 맥주를 몇 병 샀던 것 같습니다. 호텔로 가지고 와서 마른 안주 몇 개 까 놓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참, 한국에서 가져간 사발면 그 때 같이 먹었습니다.

미켈럽 캔을 4개 정도 먹었을 겁니다. 그러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너무 속이 안 좋아서 일어났고, 느닷없이 되새김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변기를 끌어 안고 웩웩 거리다 보니,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탈진 상태가 다 되더군요. 그 다음날 저는 하루종일 호텔방에서 끙끙 앓았습니다. 남들은 다 놀러 나간 그 호텔방에서 혼자 끙끙 앓다가… 선배가 한국 수퍼에서 샀다고 가져다 준 사발면 하나, 국물 받아 먹고서는 그제야 속을 좀 차렸습니다.

그 뒤로 미켈럽이나 버드 같은 맥주는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너무 고생을 했었거든요. 아마 맥주와의 이별 ^^은 이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 IMF가 터졌습니다. 현지 신문과 뉴스를 보면 한국이 부도 나서 다 망했다 라는 분위기였는데, 얼마나 살벌했겠습니까? 무슨 전쟁 난 것 처럼 호들갑을 떠는 언론 때문에, 걱정이 말도 아니었습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여~ 어수선하게 있다가 귀국 길에 올랐죠.

열흘 만에 귀국이었는데, 남겨 온 달러 환전하면서 돈 벌기는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한국은 진짜로 난리가 났었고, 계속해서 그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거죠. 우리도 부서 하나가 통으로 날라가고, 그 때까지 지원해 주었던 핸드폰 등 각종 복지 서비스가 없어지고, 연봉 협상 때는 전직원 5% 급여를 삭감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거의 손 안 댄 편이더군요. 주변에 다른 회사들 망가지는 것, 다른 사람들 회사 떠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얌전한 편이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그 때는 차마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너 별 일 없니? 라고 물어보기조차 겁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렇게 술 잘 사 주던, 선배들, 높은 양반들이 이제는 술 사 줄 생각을 안 합니다. ^^ 예전에는 그런 걸 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회사 앞 간이 분식점 – 튀김과 떡볶이, 오뎅 이런 것 팔던 그런 분식점 – 앞에서 튀김과 떡볶이를 앞에 놓고 소주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술은 먹고 싶고, 주머니는 가볍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스레 2차, 3차 술자리는 드물어졌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그냥 일차에서 소주 먹고 헤어지는 그런 형국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삼겹살과 소주, 그리고 된장찌개의 환상적인 맛에 조금씩 길들어져 갔습니다.

어느 날이었든가, 몹시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후배들 몇과 같이 광화문, 평소에 점심 먹으러 자주 가던 N식당에 갔습니다. 이 집은 점심은 별로 맛이 없지만, 저녁에 구워 먹는 생 삽겹살이 아주 괜찮은 집입니다. 값도 부담 없고 ^^ 모처럼 후배들과의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소주 잔이 도는데, 아~ 마치 소주가 사이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소주 맛에 급격하게 빠진 건 바로 그 때 부터 였습니다. 후배들과의 일차 술자리에서 그 사이다 같은 소주를 원샷, 원샷 그렇게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빨리 취해버렸던 것 같습니다. 4명이서 열 병 정도의 소주를 마셨던 것 같고, 그날 따라 빨리 취해버린 저를 후배들이 택시에 태워 보냈습니다.

밀렸던 것을 한꺼번에 다 해결하려 그랬었을까요.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 이렇게 보름인가를 주말만 빼고 매일 소주를 마셨습니다. 매번 그 식당 그 삽겸살에 그 소주… 얼마나 그 식당을 열심히 다녔든지, 그 식당 사장님은 제가 그 회사를 그만 둘 때 모였던 회식 자리에서, 저하고 같이 소주 들이키다가 저를 붙들고 울기까지 했답니다. 서운하다고 ^^

그렇게 소주와 친해지면서 맥주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장이 맥주에 거부감을 일으키더군요. 맥주만 먹으면 설사가 나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 때를 지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렇게 맥주와는 멀어지고, 소주와는 점점 더 깊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음주 편력기 #4 - 신문사편

96년 말, 저는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맡게 됩니다. 6년 동안 일하던 분야에서 떠나 새로운 직장에서, 인터넷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그 전에 하던 일도 소위 말하는 IT 관련 일이었지만, 더 큰 직장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 바로 신문사의 인터넷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신문사라서, 회사에 대한 기대감도 꽤 컸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긴장되게 만들었던 건, 바로 신문사의 음주 문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신문사는 술 많이 먹는다지, 낮술도 많이 먹고, 걸핏하면 폭탄주라는데… 하여튼 별 희한한 소문 다 듣고 갔습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은 그냥 인사만 했고, 하룬가 이틀이 지나서, 팀에서 회식을 해 주겠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신문사 술 쎄다는 거 알지? 나 어쩌면 오늘 못 올지도 몰라… 어머나, 그럼 어떡해, 술 조심하고, 늦더라도 택시 타고 와~ 이렇게 잔뜩 긴장을 하고 그렇게 출근했고, 일도 했고, 어느덧 회식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회식은 1차에서 고기 먹고, 2차에서 맥주 먹고, 뭐 그렇게 정해진 코스였습니다만, 아예 맥주집으로 가는군요. 흐음, 이젠 죽었다~ 각오를 단단히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맥주 몇 병을 시키고, 골뱅이와 계란말이 – 계란말이가 이렇게 맛있는 안주라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 - 가 나왔습니다.

맥주 잔이 돕니다. 여섯 혹은 일곱 명 정도가 같이 있었을 겁니다. 경력으로 옮긴 거라서,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습니다. 한 두어 병 적도 먹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고 시간도 두어 시간 흘렀습니다. 팀장님이 얘기합니다. 이제 그만 일어서지… 아, 드디어 다음 차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나와 보니, 그냥 빠이빠이 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랏?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이지? 다들 약속이 있다고, 내일 보자고 악수하고 그냥 사라집니다. 팀장님이 그러고 가니까, 뭐 다른 사람들이야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헤어졌습니다. 출근한지 얼마 안 되어 친한 사람도 없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냥 멍~ 했었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발면 하나 물 부어 놓고, 허탈하게 창 밖을 쳐다 보았던 그 황당한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사발면 먹고, 지하철 타고, 천천히 집에 들어갔습니다. 열한시 좀 넘었더군요. 어머? 못 들어온다더니? 완전히 아내 앞에서 바보 됐습니다. 몰라야~ 그러고 그냥 자 버렸습니다. 술을 먹기는 뭘 먹어~ 꿍얼꿍얼~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전초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몇일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삼일 지난 후에 같이 일하던 선배와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역겨웠던 소주를 조금씩 이라도 입에 대게 된 건 이 때부터였지요. 약간의 소주와 분위기에 흥이 겨웠던 선배, 오늘은 내가 사야지… 하면서 맥주집으로 데려 갑니다.

아실 겁니다. 광화문에 가면 라이브 카페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허름한 집에 맥주도 팔고 가끔 피아노와 기타도 치는 그런 카페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많이 갔었던 집들이지요. 그 중에 한 곳으로 싹 들어 갑니다. 가자 마자, 양주와 맥주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옵니다. ^^

저의 폭탄주 기행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계절의 이름을 땄던 그 어두운 카페, 오래된 나무 테이블, 팝콘과 마른 안주… 그렇게 시작된 폭탄주를 네 잔까지 먹고, 그 선배와 헤어졌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폭탄주의 맛이었습니다. 독하지도 않고, 시원한 맥주의 맛과 함께 속에 불을 지르는 듯 타오르는 양주의 맛… 맥주잔 속에 양주잔을 그대로 퐁 빠뜨려 먹는 오리지널 폭탄주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때 부터였습니다.

때 마침 회사를 옮긴 때가 12월 이었습니다. 연말 모임, 무척이나 많을 때였죠. 그렇게 선배님들, 높으신 양반들을 따라다니면서 먹기 시작한 폭탄주.. 하루 저녁에 일곱잔은 보통이었습니다. 아마 그 해 12월, 제가 마신 폭탄주가 아마 70잔은 넉넉히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폭탄주와 양주를 먹으면서 단란주점이라는 곳을 가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갈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술을 잘 먹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도망 나오기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거짓말이라구요? 아, 그 때 저의 모습을 아는 분들이 요즘 저를 보면 놀라 나자빠집니다. 제 친구 중 한 녀석은 신문사가 사람 다 망쳤다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

참, 술이란게 무섭게 빨리 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 자리에서 맥주 두 병 이상은 먹지 않았던 저였는데, 이제는 맥주는 맥주 대로, 폭탄주는 폭탄주 대로… 순식간에 술은 늘어만 갔습니다. 젊었던 탓인지, 폭탄주 일곱잔을 먹어도, 전혀 되새김도 없이 ^^ 멀쩡하게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아내도, 제가 그 정도로 먹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전보다 술을 많이 먹는다고 불평하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소주는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차에서 분위기 띄우는 정도… 오로지 2차에서의 맥주와 3차에서의 폭탄주에 저는 그만 폭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폭탄은 먹어도 소주는 안 먹어~ 라고 얘기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지독하고 대단한 음주 이력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주, 이제는 최고의 술은 소주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소주와 친해진 건, 빌어먹을 IMF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음주 편력기 #3 - 첫직장편

어머니의 강력한 태클에 걸려 술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학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나마 졸업식 마친 후 아버지로부터 한 잔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던 건, 바로 첫 직장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4학년 일학기 마치고, 여름 방학 중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냥 작은 회사였는데, 한 달에 한 번 무척이나 바쁜 그런 일이었죠. ^^ 8월 12일에 첫 출근을 했고, 그 날은 어영부영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저하고 동갑내기 여자 친구, 이렇게 둘이 입사 했었습니다. 동갑인데다가 동기라, 거기에다가 그 친구가 또 예쁘게 생겼던 탓에 – 하여튼 ^^ - 첫 날부터 마음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집에 갔으니까요.

13일. 운명의 날이죠. 12일에는 선배들이 바빠서 회식을 못 해주었고, 다음 날 회식을 하기로 했던 겁니다. 삼겹살을 파는 집이었던 것 같구요, 우리 팀 여덟명 정도가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참, 얼마나 설레였겠습니까? 취직도 잘 안되는 과였는데 여름방학 마치고 떡 하니 취직도 됐고, 이렇게 선배들하고 회식이라는 것도 해 보고… 가기 전에 각오 했냐? 라고 물어보던 한 선배의 얄궂은 미소가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하여튼 설레이는 자리였습니다.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각오했냐고 물어보던 선배, 이 선배가 맥주잔을 청하더군요. 댤걀 2개와 함께. 맥주잔에 달걀 노른자를 까 넣고, 소주를 가득 채웁니다. 맥주 잔에 적당히 채우면 소주 반 병이 들어간다는 사실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두 잔을 만들어서 저와 또 같이 입사한 그 여자 동기한테 한 잔씩 줍니다.

마셔~… 그게 답니다. 그 때 저희를 바라보던 다른 선배들의 눈동자… 지금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 뒤에 제가 비슷한 방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히던, 아마 그와 비슷하게 재미있어 하는 모습으로 쳐다 보았겠지요. 저는 차마 먹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냄새만 맡아도 역겹고, 그날 아침 회식 있다고 늦을 거라고 말할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먹지 말고, 그냥 옷에다가 부어라~ 라는 팁을 되새겨 보기도 했습니다만, 순식간에 그 첫 잔을 들이켜 버리던 여자 동기를 보는 순간, 저 역시 맥주잔에 가득 들은 소주와 노른자를 입에 부어 넣고 있었습니다.

그게 한 잔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렁찬 박수와 함께 두 번째 잔이 제조 되었습니다. 첫 잔의 역겨움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잔이라니… 노른자는 빼 주세요~ 여자 동기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두 번쨰 잔은 노른자 없이 그냥...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맥주집에도 간 것 같은데, 화장실 쳐다 보던 기억 밖에 안 나고… 신입 둘이서 술 먹고 바로 퍼져 버리는 바람에 그날 회식은 그걸로 쫑이었습니다.

각오했냐고 물어보던, 술 제조의 악역을 담당했던 그 선배가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어야 했습니다. 택시 안에서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억억 거렸던 것 같고, 그 기억에 어떻게 집을 찾아갔는지 모르지만, 그 선배한테 팔을 맡기고 끌려 올라가던 저를, 어머니가 어떻게 쳐다보셨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아무런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그대로 방으로 달려가서 쓰러져 잤던 것 같습니다. 데려다 준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도, 그냥 같이 자자는 말도 못했답니다. 그 선배도 많이 취했던 것 같아서 아버지께서 같이 자고 가라고 했다는데, 그냥 갔다고 아침에 그러시더군요. 예상컨대 어머니는 넋이 빠지셨던 것 같습니다.

강력한 태클에 걸려 대학교 다니는 내내 술 냄새도 안 내고 오던 놈이 출근 이틀 만에 떡이 되어 그것도 업혀 들어오니 넋이 나갈 만도 하시겠지요. 아마, 이제 내 태클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구나 하고 체념하셨을 런지도 모릅니다. 아, 어머니의 태글이 오버였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 때 어머니 앞에서 혀라도 한 번 내밀어 볼 걸… 그랬나 봅니다.

잠결에도 어머니가 옷을 벗기고 물 수건으로 얼굴과 발을 닦아주셨던 건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아침에 쓰린 속을 붙들고 일어나니, 콩나물 국에 고춧가루 풀어서 주시더군요. 니 아버지 해장국도 안 끓여봤는데, 아들 놈 속 풀으라고 콩나물 국을 다 끓였다고, 투덜투덜 하셨답니다.

그 여파로 저는 97년까지 소주는 입에도 대지 못했습니다. 소주 냄새만 맡으면 올라오는 그 역겨움 때문에 술자리에서는 항상 맥주만을 청해 먹었지요. 제가 경력이 쌓이고 선배가 되고 그러면서 저에게 소주를 먹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맥주는 많이 먹었냐구요? 아니요. 많이 먹어야 두 병… 그렇게 맥주 두 병의 주량을 지키면서 순진한 생활을 유지해 나갔답니다. ^^

나의 음주 편력기 #2 - 어머니편

어쨌든 어려서부터 저는 술을 접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생일날 샴페인 터뜨리는 정도랍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다 그렇고 그런 순둥이들이어서 그랬는지, 저희는 소주 먹고 뭐 이런 건 별로 못했습니다. 하긴, 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라서 그럴 일도 없었겠지만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성가 발표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몇 명이 중창을 하게 되었는데, 많이 떨었죠 ^^ 중창을 지도하던 선배가 어디서 와인 한 병을 구해와서 그걸 여섯 명이서 나눠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두 세 친구는 얼굴이 붉어졌던 것 같았고요, 콩당콩당 하는 마음이 진정이 된건지, 오히려 불을 지른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정도가 어릴 적 음주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의 탈출구, 아니 전환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죠. 뭔가 얽매이지 않을 것 같고, 방종이라고 해도 좋을 자유가 있을 것 같은, 대학 일학년의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학생이 많은 과였습니다. 남학생은 복학생 한 명을 포함해서 모두 11명. 덕분에 남학생들이 잘 뭉치기는 했죠. 비록 입학하고 몇 달 뿐이었지만 ^^. 처음 만난 날부터 복학생 형 주도로 11명이 의기투합, 소주집에를 갔습니다. 학교 앞 그 허름한 소주집, 간이 테이블에 앉아 김치찌개를 시켜 놓고 소주 잔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맛보는 소주, 괜히 다른 친구들한테 기죽기 싫어서 아무 소리 않고 원샷, 원샷, 원샷, 그렇게 세 잔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유, 이런 걸 뭐러 먹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쓰기만 하고, 별로 취하지도 않고. 그렇게 조금씩 술을 먹다가 사고(!)가 터진 건 개강파티 때였습니다.

엄마, 오늘은 개강파티 하느라 늦게 와~ 아침부터 인사를 하고 오는데, 어머니가 느끼기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나 봅니다. 너 술 먹으면 안돼~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으십니다. 그 간 조금씩 먹고 들어간 것은 어머니가 눈치를 못 채셨길래, 오늘도 뭐 그렇겠지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 넘긴 거지요.

개강파티, 사실 저는 소주가 맛 없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그래서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분위기에 맞춰 흘러갈 뿐이지요. 개강파티 때도 맥주 두 병 정도 먹었던 것 같습니다. 맥주 먹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다가 놀고… 그렇게 파티는 끝났습니다. 싱겁죠?

사건은 이제부터입니다. 소주 몇 잔 마신 것도 엄마가 눈치 못 챘는데, 맥주 조금 먹은 걸로 표가 나겠어~ 방심하고 들어섰죠.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물어 봅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너 술 먹었어? 물어 보셨지요. 그 때 안 먹었다고 잡아 뗐어야 했는데, 엉겁결에 응, 맥주 두 잔 정도 먹었는데? 라고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무서워서 두 병을 두 잔으로 줄였던 거지요.

난리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붙들고 통곡을 하십니다. 아버지 술 마시는 게 그렇게 한 스러워, 내 너한테는 술 먹지 말라고 일렀겄만,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는 거지요.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 여동생 놀라서 튀어 나오고, 저는 무릎 꿇고 앉아서 잘못했다고 빌고… 하여튼 난리 났었습니다. 아파트 살 때 였는데, 엄마랑 친한 옆집 아줌마가 무슨 일 있냐고 인터폰하고, 그랬을 정도니까요.

아, 그런데, 그게 어머니의 오버이자, 작전이었다는 걸 안 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이젠 술 마시는 일에 대해 어머니가 도저히 시비를 못하게 된, 거의 십여년쯤 지나서였습니다. 장인 장모님이 집에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제가 왜 대학 다닐 때 술을 안 먹었는지 얘기를 막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피식 웃으시더군요. 그 날 사실 술 먹은 것도 몰랐고 넘겨 짚었는데, 제대로 걸렸다는 거였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 어머니의 연기, 리얼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대학 다닐 때 술 냄새를 내면서 집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이 먹지도 않았지만, 소주 한 두어잔, 맥주 오백 정도 먹고 갈 때마다 뛰기도 했고, 껌도 씹고, 온갖 생쑈를 다했습니다. 어머니의 오버 액션에 완전 맛이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은 술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재미없게, 별 얘기 없이 대학 생활을 하다가, 어찌어찌 알던 선배 소개로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이 91년 8월이었습니다.

나의 음주 편력기 #1 - 아버지편

저는 다른 사람보다 술을 빨리, 세게, 그리고 많이 마시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사람 만날 일이 많고, 사람을 만나길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술을 가까이 하게 되는가 봅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술을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비교적 엄격한 편이었던 어머니는 아들이 술 마시는 걸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길 분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전문직이라고 인정 받는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노가다에 다름 없었던, 그런 직업을 가지셨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약주를 하셨고, 그런 아버지의 음주에 대한 반감도 나름대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릴 적,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쯤이었나, 모처럼 아버지께서 집에 일찍 오셨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후배 되는 분 – 삼촌이라고 부르라 하셨던 – 이 집에 찾아오셨죠. 나름대로 아버지와 상의할 것도 있고, 그랬었던 것입니다. 그 분과 아버지가 나가시려고 하는데, 어린 제가 잠자다가 나갔습니다. 아버지 가지 마세요 ^^ 결국 아버지는 저 때문에 못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으셨는데, 단지 그 술 드시는 것에 대해서만은 불만이 많으셨답니다. 그래서 항상 저한테, 넌 술 먹지 마라, 술 먹지 마라 하셨던 거지요. 저희 아버지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한동안 끝발 날리셨던 한식, 궁중요리 전문 호텔 요리사 셨습니다. TV나 여성지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 심지어는 국무총리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는 통에, 국무총리 공관에 갔다 오시기까지 하셨답니다. 하루는 모처럼 퇴근 하셔서 쉬시는데 5공 시절 대통령이 왔다고, 불려 나가시기도 했죠. 그 때는 아버지께서 운전을 못 하시던 때라 제가 모셔다 드렸었지요. 그 양반한테 술 한 잔 받아 드셨다는데, 그게 그렇게도 기억에 남으시는가 봅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는 잘 몰랐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일이 너무 힘드신 탓에 저만 보면, 펜대를 잡아야 해, 펜대를… 그렇게 사무직에 대한 동경도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펜대는 놔두고,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건, 대학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호텔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대학생이니까 아르바이트 해야지, 그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마침, 어, 우리도 아르바이트 구하는 모양인데 한 번 해볼래? 해서 덜컥 그러마고 했던 거지요. 접시닦이, 와 그거 장난 아닙니다. 수도 없이 나오는 접시들, 아무리 접시 닦는 기계를 이용한다지만, 기계에 넣기 전에 세제 묻히고, 뜨거운 물로 닦여 나오는 접시를 받아서 다시 마른 수건으로 닦고… 게다가 접시 닦으라고 불러 놓은 아르바이트였지만 접시만 닦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온갖 심부름 다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호텔 수영장에서 파는 우동에 곁들이는 단무지 써느라 손톱은 노랗게 물들고 단무지 냄새가 온 몸에 배여 지하철 타기가 창피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르바이트가 하는 일은 사실, 거기 소속된 분들이 하는 일과는 또 다릅니다. 아르바이트 하던 저희와 같이 일하시는 분 중에, 요리를 배워 보겠다고, 대학교 일학년인 저보다 한 두살 더 많았던, 형이 있었습니다. 진짜 처음부터 배우는 거지요. 그 형을 보고 있으면, 진짜 저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낼까 할 정도였습니다. 접시를 비롯해 그 엄청난 설거지를 다 해야 하고, 썰고 깎는 것 다 해야 하고, 음식 재료 들어오면 날라야 하고. 심지어는 막판에 주방 청소까지… 그래서 저는 알았습니다. 왜 유명한 요리사는 남자들인지… 여자들은 요리 연구가라는 이름일 뿐, 왜 호텔에서 일하는 유명한 요리사들이 전부 남자여야 하는지를 그 때 알았습니다. 요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던 거지요. 그 사실을 처음 깨닫는 날, 저는 스팀으로 가득한 접시닦이 기계 앞에서 땀 반, 눈물 반, 그렇게 눈을 적시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이라서 아버지는 퇴근 무렵 소주가 그렇게 좋으셨던가 봅니다. 그것도 어디 번듯한 식당에서 드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하시던 주방 한 켠에, 같이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간단한 안주 거리 몇 개 놓으시고 맥주 잔에다 소주 받아 드시던 것이었습니다. 보통 아버지들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아이들이 아빠 또 술 먹었징? 그러면.. 딱 한 잔 했어… 그러시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딱 한 잔… 그 한 잔이 맥주잔 한 잔 이라는 걸,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버지 일하시는 옆에서 일하다가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

그런 아버지셨지만, 어머니가 무서우셨든지, 아들에게는 술 먹지 마라는 말씀 뿐이었습니다. 하다 못해 대학 4년 - 아니 5년이구나 ^^ - 동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술 한 잔 사주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첫 잔을 받은 건 졸업식 마치고 였습니다. 운좋게 4학년 1학기 마치고 취직이 되었던 저는, 졸업식 때 직장 선배들이 다 따라와 주었고, 아버지가 일하시던 호텔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저에게 맥주 한 잔 따라 주셨습니다. 그렇게 받은 그 첫 잔, 감히 다 마시지도 못하고 반만 먹고 내려 놓은 그 첫 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요즘은 당뇨기가 약간 있으셔서 술을 드시지 않습니다만, 이번 주말에는 아주 약한 술 한 병이나마, 아버지와 함께 해야 겠습니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