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을 보내며

322회. 윤도현이 등장했다. 예상 외로, 그의 눈이 젖어 있었다. 그는 떨린다고 했다. 6년 8개월이나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놓고서도 떨리나 보다. 그래, 마지막은 원래 그런 법일테니까.

내 음악적 취향이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심야의 러브레터는 술 한 잔 들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약간은 알딸딸한 기분으로 즐기기에 딱 좋은 프로그램이다(아니, 이젠 ‘이었다’라고 표현해야 겠다). 심야 시간만 아니었다면 볼륨을 있는 대로 키우고, 마치 공연장에 있는 것처럼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며 음악을 듣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을 게다. 공간이 된다면, 나만의 리스닝 룸을 만들어 놓고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리도 빨리 마지막이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리 마음을 열어도 내가 적응하기 어려운 장르가 힙합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첫번째 손님은 드렁큰 타이거. 다른 날 같았으면 채널을 돌렸음이 분명하지만, 오늘 만큼은 채널을 돌릴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작용했던 탓일까. 오늘 만큼은 그리 부담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사실 예상은 했었지만) 마지막에 윤미래라니. 한국인의 목소리에서 어찌 저런 R&B가 나온단 말이냐~ 하고 혼자 제멋대로 평가하던 그가 나와 힙합을 불렀다. 뭐, 이 정도면 들어줄만 하겠는 걸.

드렁큰 타이거는 윤도현이 뚝심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실 윤도현은 정치색이 진한 개그맨의 출연을 막은 것으로 한 때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개편에서 그가 마이크를 내려 놓게 된 것이 KBS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비싼 MC부터 짜르기 때문이라는데, 속내는 그의 정치 성향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막말로 윤도현이 밉보였다는 얘기다. 솔직히 어떤 게 진실인지 우린 알 도리가 없지만, 요즘 대한민국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런 얘기가 아주 합당하게 들린다는 게 더 어이 없다. 솔직히 정치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주 당당하게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연예인 출신 장관이 있고 이미 출발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다. 참 내. 이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기는 한 건가. 대한민국 정부, 관공서, 언론사 그리고 이제는 방송국의 MC자리까지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야 하는 것인가.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건, 특정한 음악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음악을, 그저 음악으로 대했기 때문일게다. 이런 프로그램 답게, 힙합에 이어 박정현이 R&B 발라드를 들고 나왔다. 그래, 이제 내 스타일이 나오네. 게다가 난데없이 김제동이다. 자기가 어려웠던 시절, 방송국에서 주는 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윤도현이 보낸 돈이었단다. 그러더니 어랏? 노래까지 하고 들어간다. 일어나를 부르는 김제동의 목소리가 떨린다. 아마 윤도현과 김제동은 무대 뒤에서 어쩌면 한바탕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우 김성현이 마지막 편지를 읽고, 어느덧 마지막 게스트. 크라잉넛이다. 윤도현이 그만 두게 되는 이유에 딱 어울리는 밴드가 아닐 수 없다. 첫 곡은 밤이 깊었네. 이건 내 18번이 아닌가. 그리고 크라잉넛은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열정적으로, 미치도록 크게 외치고 들어갔다. 닥쳐! 닥쳐! 이거 마치 누군가한테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닌가.

올 바이 마이셀프를 부르고, 방송 끝났으니까 여기서라도 화끈하게 끝내보자는 마무리 영상에 이르기까지 윤도현의 눈은 여전히 젖어 있었다. 아쉬움을 끝으로, 거의 두 시간에 걸친 방송이 끝났다. 윤도현은 이제 MC에서 락커로 돌아갔다.

마지막을 위로하려 할 때, 우리는 흔히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한다. 솔직히 윤도현의 눈이 젖어 있다는 이유로, 위로를 하는 것(위로를 한다고 전달되지도 않을 테지만 ^^)이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가 취해왔던, 모든 음악을 음악으로만 대접하던 러브레터의 분위기를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음악가를 인정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하나 사라진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하나 사라지는 걸로 이 일이 끝날 것인가. 나는 쓸데없이 그 미래를 오버해 생각하는 것이 더 두렵다. 윤도현을 보내며, 그 암울한 미래에 대해 건배.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11.17 10:20 ADDR 수정/삭제 답글

    윤도현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는데..정말 아쉬워요. 이하나 씨도 잘 하겠지만, 프로그램 사라지는 데에 이렇게 안타깝다니...

  • ^^ 2008.11.17 12:27 ADDR 수정/삭제 답글

    오프닝 때부터 촉촉한 눈빛을 보이더니 결국 그랬군요... 마지막 방송을 끝까지 다 못봐서 아쉬워요..

  • Favicon of https://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8.11.17 15:4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올 한 해는 많은 곳의 수장들이 바뀌고,
    많은 부분의 변화가 일어나고 ..
    그런 한해였습니다.
    윤도현 이란 사람도 트렌디한건가? 그 시류위에 발을 디뎠군요.
    전원석의 노래 '가는곳 어디이길래' 생각 납니다.
    "가는곳 어디이길래 그대 눈물 흘리나 얼마나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11.17 16:37 ADDR 수정/삭제 답글

    대한민국은 민주는 빼고 그냥 공화국 정도의 수준인 것 같아.. 아무리 발전해도 이 모양이니.. ㅜ.ㅜ

  • Favicon of http://gamsa.net BlogIcon 양깡 2008.11.18 00:10 ADDR 수정/삭제 답글

    건배~! 아쉽습니다.

  • 진주애비 2008.11.18 08:26 ADDR 수정/삭제 답글

    러브레터도
    시투도 다 떠났네요
    원래 티브이 잘 안보지만 그래도 서운한다는,,,^^

  • 비됴왕 2008.11.25 00:52 ADDR 수정/삭제 답글

    아쒸.. 윤씨가수들 몇 없는데.. 윤수일 이후로 윤도현이 최고였는데.. 여자도 윤복희빼곤 대형 가수가 안나오니.. 차라리 잘 됐다.. 윤도현의 1집이 아주 그리웠으니까... 헝그리 정신으로 1집 같은 음반 한번 더 내주질 기대 합니다.

  • MS 2008.12.29 13:18 ADDR 수정/삭제 답글

    마이스페이스에서 YB 이벤트해요~ 한번 가보세요~
    http://www.myspace.com/relaytalk